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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세대의 말|박화목(아동문학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프랑스」의 아동심리 학자 「장·피아제」에 의하면 생후 2년째가 끝날 무렵부터 4세까지 가정을 중심으로 한 일상 용어는 거의 다 습득한다고 한다. 또한 아동심리학에서는 언어 발달이 5∼6세에 형식면에서 일단은 성숙하는 것으로 본다.
아기가 태어나서 글자를 익히기 위해 먼저 접하는 것이 그림책이라면 그 다음에는 만화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어린이의 언어구조에 미치는 만화의 영향은 매우 크다 아니할 수 없다.
만화는 최대한의 상상성을 불러일으켜 어린이의 정서 심층면에 침투하는 큰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하므로 어린이의 인간 형성에는 말할 것도 없고, 언어 습득에 있어서도 힘의 기능을 십분 작용한다고 보야야 할 것이다.
만화를 본질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량 만화는 어린이 성장에 크게 해가 됨은 사실이다.
TV의 만화 「프로그램」에 서투른 외래어. 속어, 은어 등 어법이 맞지 않는 조잡한 언어들이 마구 튀어나와 어린이의 일상 용어를 그르치는 경향이 있음이 지적되고 있다.
좋지 않은 말들의 사례를 보면『이번엔 진짜 혼구멍을 내 줄 테니까』『적의「프리즘·머신」을 파괴했고 『우리 아버지 말씀이 맞았어 해』등등, 그밖에도 어색한 말이 수두룩하다(방송 윤리위 분석).
오늘 시중 만화(만화 가게, 대본소를 통해 어린이에게 전해지는)의 내용을 분석해 보아도 소재가「스포츠」(권투「레슬링」야구 따위)가 가장 많고, 그 다음에 모험물, 공상 과학 이런 순으로 되어있다. 어린이의 실생활이나 가정에서 소재를 얻어낸 만화는 극히 드물다.
만학의 동향이 이러하기 때문에 만화의 언어 구조적인 기능도 생활 감각과는 동떨어져 있다. 다음 몇 가지의 경우를 추출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로 만화에서 습득된 언어는 현실과는 유리된, 다시 말하면 가정에서 일상에 쓰이는 부드러운 일상생활 언어와는 동떨어진 것이기 쉽다. 그것은 만화 내용이 공상과학이라든가 폭력·모험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빚어지는 결과일 것이다.
둘째로는 비 정서적인 언어가 많다. 만화의 재미를 붙이기 위해서 선과 악의 갈등 대결을 줄거리로 삼을 경우, 어떤 대화가 나올 것인가는 뻔하다. 더우기 만화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스피디」하고 생략 적인 전개 때문에 대화의 말이 토막토막 끊어지는 수가 많다.
이것은 말의 정서성을 깨뜨리는 결과가 된다.
셋째, 만화는 대체로 도시적이다. 자극적이고, 위험(「드릴」)하고 폭력적이다. 그러므로 자극적·폭력적·암호 적인 언어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넷째, 사회규범과는 어긋나는 언어 역시 문제가 된다. 불합리한 환상을 만화 내용에 도입하다 보면 어법이 논리와 규범에 벗어나게 되고 만다.
이러한 점들은 언어기능 면에서 본 오늘의 우리 만화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한다. 만화 창작에 있어서 바른 자세로의 시점이 시급히 요구된다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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