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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도 앞길도 막막 … 발달장애 부모 고통 상상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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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최선을 다해 치료했는데도 발달장애가 호전이 안 돼 힘들다. 병원도 여기저기 다녔는데 아무런 효과가 없다. 의사에게 완치가 안 될 거라는 말을 들었다. 막막하다. 치료시설도 너무 부족하다.” 지난 13일 세상을 등진 광주광역시 기모(36)씨 부부가 남긴 유서의 일부다. 아들(5)이 발달장애인 진단을 받자 부부는 아이와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 관계자는 “광주·전남에 발달장애를 고칠 만한 데가 없다. 돌봐줄 곳도 전무하다. 아마도 세 사람이 죽은 것은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기씨의 고뇌는 발달장애인을 둔 부모의 처지를 대변한다. 발달장애인의 부모 중 한 명은 평생 아이의 손발이 돼야 한다. 일을 그만두게 돼 가구소득이 50~70% 줄고 치료비를 대다 빈곤층으로 떨어진다. 부모의 42%가 여가생활을 완전히 포기한다. 심지어 부모상(喪) 같은 집안 행사에 못 간 경우가 42.7%에 달한다. 아이한테 매달리다 보니 52%가 우울증 의심증세를 갖고 있다(2012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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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현재 발달장애인은 19만6999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가족을 합하면 70만 명이 넘는다. 2012년 정부가 관심을 가지면서 이런저런 서비스를 도입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외양만 갖췄지 속을 들여다보면 허술하기 짝이 없다. 부모 교육이나 상담은 대상 인원이 3000명 안팎에 불과하다. 중증장애인 돌보미 지원, 성년후견인 지원 등도 마찬가지다. 수혜 인원이 적다 보니 소득으로 제한을 둬 중산층은 엄두를 못 낸다. 자해하거나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으면 전문시설에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전국에 국립서울병원·서울시립어린이병원 등 3곳밖에 없다. 1~3년간 대기해야 들어간다.

 박태성(45·장애인부모회 회장)씨의 막내딸 규리(7)는 뇌병변장애와 지적장애가 있는 발달장애인이다. 엄마(41)가 학교에 데려다 주고 데려오고, 치료실에 동행해야 한다. 오후 5시쯤 집으로 와서 복습시키고, 24시간 아이 곁을 떠날 수 없다. 박씨 부부는 ‘이 아이를 어떻게 하나, 평생 안고 가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지금은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고 손 놨던 사업을 다시 시작했다. 마음을 많이 다진 박씨도 아직 “앞이 안 보인다”고 말한다.

 성인이 되면 더 문제다. 학령기까지는 특수학교 등이 부담을 다소 덜어주지만 성인이 되면 부모 차지다. 50~60세 넘은 부모가 성인 자녀를 보살핀다. 주간보호센터가 일부 부담을 덜어주지만 400개밖에 안 돼 수요자의 5~10%밖에 감당하지 못한다. 자립은 불가능하다. 취업률이 16.5%에 불과하고 취업해봤자 월 소득이 40만원밖에 안 된다. 혼인한 성인 발달장애인은 20%가 채 안 된다.

 이들을 지원하려면 법률이 필요하다. 미국이나 일본은 독립 법률이 있다. 새누리당 김정록 의원이 2012년 19대 국회 1호 법률로 발달장애인 지원법을 발의했으나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그 이후 두 개 법률이 더 제출됐으나 기초연금법 등 ‘복지 3법’에 우선순위가 밀려 있다. 장애인부모회 박 회장은 “발달장애인 부모의 고통은 아무도 상상을 못한다. 주간보호센터·그룹홈 등 복지시설의 주민 기피현상도 심하다”며 “조속히 법률이 국회를 통과해야 지자체가 조례를 바꿔 서비스를 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성식 선임기자

◆발달장애=아동기에 발생한다. 지적장애와 자폐장애가 있다. 전체장애인의 7.3%이며 자폐장애의 60% 이상이 18세 미만이다. 2005년 영화 ‘말아톤’이 자폐장애를 다루면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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