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자 위한 「여성의 해」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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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성의 해, 여권신장, 여성해방에 대한 기사를 읽을 때마다 몇몇 저명한 여성에 좀더 나은 대접을 해달라고 부르짖는 것 같아서 영 마땅치 못하다.
밑바닥인생을 살아가는 여성이 수두룩한데 이들을 옹호하고 이들을 해방시키겠다는 구체적인 안건은 별로 들은 기억이 없다. 여권이 내려오는 것인지 밑바닥에서부터 점차로 승격해 나가는 건지 아리송하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엄연히 귀천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다만 아무리 하찮은 직업에 종사할지라도 조금도 거리낌이 없고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 며칠 전 갑자기 배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맹장염이라고 해서 수술 후 입원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다른 병실의 환자 가족들이 나의 처지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는 사실에 놀랐다.
그러나 그들의 동정 어린 눈빛에 오히려 커다란 불쾌감을 맛보아야 했다. 남의 집에 있다고 해서 나 자신은 조금도 창피하거나 부끄럽게 생각지 않는다. 다만 열심히 살고 싶은 것 뿐이다. 그런데 주위의 모든 것으로 부터 소외를 느낄 때 슬퍼 질 수 밖에 없고 「여성의 해」도 약한 자를 위한, 「여성의 해」였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다. 유순정<서울 성동구 광장동 353·학장사택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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