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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병역세 걷자” “계층 갈등을 여성에게 화풀이”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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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서울 광화문 여성가족부 앞에서 남성연대 김동근 대표가 남성에게만 병역을 부과한 병역법이 합헌이라고 본 헌재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신체적 약자라는 이유로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지우지 않는 게 오히려 남성우월주의적 발상”이라고 주장했다. [사진 남성연대]

“대체복무가 어려우면 여성에게서 병역세를 걷어 군복무하는 남성에게 월 40만~50만원씩 줘야 합니다.”

 남성연대 김동근(24) 대표의 목소리가 커졌다. 남성에게만 지워지는 병역의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지난달 27일)에 대한 불만이 묻어났다. 그는 “여성이 군대에 가는 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사실상 일반기업과 업무 강도가 비슷한 대체복무마저 체력적 차이를 이유로 반대한다면 이는 곧 일반기업에서 여성들에게 가혹행위를 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대체복무마저 여건상 힘들 경우 비(非)복무자들에게 병역세를 걷는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재원으로 군복무자들이 2년 동안 1000만원 정도의 목돈을 쥐고 나와 등록금·창업자금 등으로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남성연대는 여성의 대체복무를 실행하지 않는 것은 평등권 침해라는 이유로 다음 달에 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할 계획이다.

 지난달 합헌 판결로 뜻을 이루지 못한 이모(22)씨가 2011년에 낸 병역법 제3조 제1항(병역의무를 대한민국 ‘남성’에게만 한정한 것)에 대한 헌법소원 사유에는 ‘남성들의 논리’가 담겨 있다. 여성의 신체적 능력은 군복무를 이행하지 못할 정도가 아니다, 한국 여성의 출산율은 감소하고 평균 출산연령도 고령화돼 군복무와 여성의 출산 사이 상관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 반면 남성은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병역의무를 수행하느라 취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불이익이 크다….

 이에 헌법재판소는 개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남성과 여성을 판단할 경우 남성이 전투에 더 적합한 신체적 능력을 갖추고 있고, 유일하게 여성에게도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이스라엘에서도 여성의 전투 단위 근무는 매우 이례적이라는 이유로 합헌 판결을 했다. 그러면서 여성 복무시설과 관리체계에 드는 비용과 기강 해이 우려 등 현실적 난관들도 거론했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차별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헌법재판소가 남성만의 병역의무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하지만 병역 문제는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남녀의 갈등요소로 남아 있다. 군대는 한국 남성의 자랑인 동시에 피해의식의 원천이기도 하다. 군대라는 사회를 맛보며 조직문화에 먼저 익숙해진다는 것, ‘군대’라는 말만으로도 똘똘 뭉칠 수 있는 ‘동기애’, 국가를 위해 몸바쳤다는 자긍심 등 얻는 것도 많다.

 하지만 1분 1초가 아까운 경쟁사회에서 가뜩이나 시험 성적도 더 좋은 동갑내기 여성에 비해 2년 늦게 사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큰 부담이다. 청춘을 바쳐 복무하고 제대해 봐야 사회의 대우는 짜고, 세상은 탈 위계질서·탈 군대문화를 격려한다. 또 군 가산점제는 여성과 장애인 등을 차별하는 제도라는 이유로 1999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여성학계에선 군대로 인한 남성들의 피해의식과 불만은 번지수를 잘못 찾은 것이라는 주장도 편다. 연세대 조한혜정(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군복무 2년으로 인한 박탈감과 피해의식은 낙후된 우리 군 시스템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해의식 해소를 위해 군인들이 시간 낭비라 느끼지 않고 자부심과 보람을 느낄 수 있게 군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수진 서울대 여성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돈과 백이 있으면 불법적으로 군대에 가지 않는다는 등의 계층적 갈등의식이 여자에 대한 분풀이로 바뀌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병역의무를 다한 남성들에 대한 보상심리를 충족시켜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채규만 한국심리건강센터장은 “국방의 의무를 성 대립의 구실로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누가 더 피해를 보고 있다는 식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제대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 후진적 시스템 자체를 점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재연 기자·임지수 인턴기자 que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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