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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규제는 불 합리"-폭력영화규제…관계자들 의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최근 불건전한 사회기풍과 국민정서를 해칠 우려가 있는』폭력영화(TV영화 포함)의 제작·수입을 강력히 규제한다는 당국의 방침이 밝혀짐에 따라 영화계와 방송계는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코작』『FBI』(TBC-TV), 『형사「콜롬보』(KBS-TV), 『「샌프런시스코」수사반』 (MBC-TV) 등 외국의 범죄수사물을 방영하고 있는 각 TV방송은 잔인한 폭력장면·살인행위 등의 묘사를 삭제하는 동시에 자극적인 대사도 바꾸기로 방침을 세웠으며, 영화계는 이미 제작된 영화나 이미 씌어진 「시나리오」에서 당국의 조치에 저촉되는 부분을 들어 고치느라고 부산하다.
그러나 문공부가 마련한 『폭력 영화의 제작 및 수입불허 기준』은 그 나름대로 영화 예술에 있어서 폭력 표현의 한계를 명백히 규정하는 느낌을 주지 못해 이 문제는 두고두고 시비의 불씨를 이룰 것 같다.
「섹스」의 표현과 함께 폭력의 표현은 영화예술이 스스로 그 한계를 정하여 자제하지 않으면 안될 만큼 중요한 것이다. 『사회의 구조가 비대해지고 복잡해질수록 인간에게는 열등감·불안감·무능력감이 자라게 되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폭력이 생기게 된다』고 폭력을 정의한 이장현 교수 (이대·사회학)는 『영화예술에 있어서 폭력의 표현은 불가피하지만 지나친 폭력표현은 폭력 행위의 정당성을 가르쳐 줄 염려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이제까지의 폭력 영화들을 보면 지나친 점이 없지 않아 사회전반에, 특히 청소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같은 부분적인 영향 때문에 영화에서 일체의 폭력행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예술에 있어서 표현의 문제에 극심한 제약을 가하는 것이 된다는데 새로운 문제가 야기된다.
이상회 교수 문제가 야기(연세대·신문 방송학)는 『인간에게는 반항·파괴·공격하고 싶어하는 본능 심리가 있는데 이것이 억압되어 잠재 의식 속에 쌓이면 심한 갈등 속에 빠지게 된다』면서 『대리만족』을 취하게 하기 위해서도 예술에 있어서 최소한의 폭력 표현은 필요한 것이라는 사회 심리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 교수는 또 가령 TV화면이 지워진 채 방영되거나 영화가 「커트」로 전후 연결이 안된 채 상영될 때 보는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실제 이상의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영화에 있어서 범죄·폭행 장면도 예술의 경지까지 승화된 것이 많이 있으므로 무조건 규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보였다.
모두 8개 항목으로 되어있는 문공부의 폭력영화 불허기준을 보면 대체로 어떤 형태의 폭력도 배제시키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예컨대 『악과 악의 대결이나 복수 일변도의 「액션」영화는 안 된다』는 항목이 있지만 또한 권선징악적인 요소가 있다하더라도 전체 내용이나 장면이 폭력일변도인 영화도 안 된다』는 항목이 있어 가능한 폭력 표현의 한계는 극히 모호한 것이다. 『부분적으로 심한 장면을 삭제하는 정도면 몰라도 영화에서 무조건 폭력표현을 없애려는 당국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는 감독 겸 제작자인 정진우씨는 정의감을 유발시키는데 폭력 표현만큼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그 예로서 우수한 미국의 서부영화들을 들었다.
정씨는 또 이같은 조치는 연초에 발표돼야 하는데 갑작스럽게 발표됨으로써 이미 제작된 상당수의 영화나 이미 씌어진 상당수의 「시나리오」가 폐기 처분돼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문공부의 한 실무자는 『이미 그같은 조치가 발표되었으므로 앞으로의 규제는 그 조치에 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예술로서의 영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이 바탕을 이루게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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