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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6부문 석권 뮤지컬 살아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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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과 파격-.

제75회 아카데미상은 이 두 단어 사이에서 교묘한 줄타기를 했다. 6천여명의 아카데미상 회원들은 뮤지컬 영화 '시카고'에 오스카 트로피를 여섯개나 몰아주었는가 하면, 그간 할리우드에서 홀대받았던 스페인.라틴계 영화를 넉넉하게 끌어안았다.

지난해 흑인 배우 덴절 워싱턴과 핼리 베리를 남녀 주연상으로 뽑으며 '깜짝 쇼'를 벌였던 오스카상 주최 측은 올해에도 지난해에 뒤지지 않는 예상 밖 결과를 쏟아냈다.

*** 여배우 검은 드레스 물결

지난 23일 오후(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코닥 극장에서 열린 올 아카데미상은 예년보다 차분하게 거행됐다.

개전 닷새째를 맞은 이라크전에 반대하는 국제 여론을 의식한 듯 과거 화려했던 스타들의 입장식 인터뷰 장면이 사라졌고, 참석 배우들의 옷차림도 예년보다 수수했다. 여배우들은 주로 검정색 계열의 드레스를 걸쳤다.

시상식은 처음부터 '이변'으로 시작했다. 강력한 장편 애니메이션 후보작이었던 '아이스 에이지'가 일본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 불명'에 트로피를 넘겼다.

10개 부문에 후보를 올렸던 할리우드 거장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갱스 오브 뉴욕'은 단 한 부문에서도 수상하지 못했다.

또 9개 부문에서 겨뤘던 영국 감독 스티븐 달드리의 '디 아워스'는 니콜 키드먼의 여우 주연상 하나로 만족해야 했다.

미성년자 추행 혐의로 미국에서 달아나 현재 프랑스에 살고 있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아직은 스타 파워가 달리는 에이드리언 브로디가 '피아니스트'로 각각 감독상과 남우 주연상을 탄 것도 전문가는 물론 영화팬들의 예측과 크게 어긋났다.

올해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롭 마셜 감독의 뮤지컬 '시카고'였다. 초반부터 미술.의상.음향 등 기술 부문 상을 받으며 기선을 제압한 '시카고'는 여우 조연상(캐서린 제타 존스) 과 최고 영예의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6개 부문을 휩쓸었다.

뮤지컬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건 68년 '올리버!' 이후 처음이다. 또 뮤지컬 출연 배우가 연기 부문에서 상을 탄 것은 73년 '카바레'에서 각각 여우 주연상과 조연상을 탄 라이자 미넬리와 조엘 그레이가 마지막이었다.

<관계기사 s-7면>

1920년대 쇼 비즈니스의 추악한 모습을 그린 '시카고'의 압승은 70년대 이후 아카데미와 인연이 별로 없었던 뮤지컬 영화의 재기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할리우드는 통상 인간 승리 유(類)의 휴먼 드라마를 선호해왔다.

*** 노래로 전쟁 불안감 달래

'시카고'의 선전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결과다. 여배우 르네 젤웨거와 캐서린 제타 존스의 협연이 훌륭했고, 또 역동적인 춤과 노래가 불황과 전쟁 등에 위축된 미국인을 달래며 1억2천만달러(약 1천5백억원)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한국에선 28일 개봉된다.

이라크전과 관계 없이 "쇼는 계속된다"를 강조했던 아카데미 측은 이번 행사가 '그들만의 잔치'로 비치지 않도록 했다.

스페인의 명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그녀에게'가 외국 영화론 드물게 주요 부문인 각본상을 수상했고, 멕시코의 전설적 여류 화가인 프리다 칼로의 일생을 그린 '프리다'도 분장.음악상을 받았다. 최근 인종.민족의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할리우드의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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