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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피폭자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지난주의 「뉴스위크」지엔 중공의 「타퉁」탄광 얘기가 나온다. 중·일 전쟁 때 일본군에 의해 이곳에 강제로 몰려와서 일하던 중국인 노무자 1만명의 시체가 묻힌 「죽음의 구덩이」가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다.
이곳을 처음 찾은 서방 기자들은 그 처절한 모습을 「나치」의 「아우슈비츠」강제수용소와 비기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잔학성에 새삼 놀라고 있다.
그러나 「타퉁」탄광에서 일본군이 저지른 죄악상을 왜 이제 와서야 중공이 공개했을까? 여기에는 순전한 정치적인 타산이 있다.
중공과 일본은 그들간의 평화조약 체결을 에워싸고 두 달 이상이나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이를 유리하게 이끌려는 속셈으로 중공에서는 「죽음의 구덩이」를 공개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사람의 목숨을 흥정의 조건으로 이용하는 정치의 잔인성에 대해 서방 기자들은 별로 놀라지 않고 있다. 놀라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죽음의 구덩이」에서 『짐승처럼 일하고 돼지처럼 먹다 죽어 간 이름 없는 중국 사람들』보다도 더 큰 비극을 겪어 온 사람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한국 원폭 피해자들이다.
그들은 정확하게 얼마나 되는지를 우리는 알지 못하고 있다.
그저 2만5천명이 되리라 추산할 뿐이다.
그들에겐 30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구호의 손길이 뻗치지 않은 채 날마다 달마다 목숨이 쓰러져 가고 있다. 그들은 거의 모두가 일제 때의 강제 징병자·징용자·정신대원들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겐 다른 일본 피해자들처럼 원폭 의료법의 혜택이 없다. 일본인과 마찬가지로 건강 수첩을 그들에게 주자는 운동도 일본 대법원에서 얼마 전에 좌절되었다. 그들을 찾는 서방 기자들도 없다. 그들은 완전한 망각 속의 군중인 것이다.
20년 동안 원폭병을 조사해 오던 ABCC(원폭상해 조사위원회)는 지난 67년에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발표했었다.
『원폭증이라는 특별한 병은 없다. 물론 원폭 후유증의 실정은 매우 심각하지만 환자들 자신이 두려워할 만큼 심각하지도 않다.』 그러나 원폭 피해자들의 사망률은 극히 높으며 그들의 2세들의 발병률도 놀랍도록 높다.
그들의 괴로움 또한 날이 갈수록 더해지기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 중에는 이렇다 할 증상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그저 『예비 능력의 저하』만이 보일 뿐이다.
딴 얘기가 아니다. 『금이 간 몸』이라는 뜻이다. 정밀 검사로도 밝힐 수 없는 이런 증상으로 까다로운 오늘의 삶을 걸어가야 하는 그들을 돌봐 줄 사람이 지금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피폭 사망자의 넋을 달래는 위령제가 열리는 오늘도, 그들에게 웃음을 안겨 줄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고 있다. 그런 속에 그들은 또 오늘 하루를 넘겨야 한다. 그를 또한 우리네 애틋한 동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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