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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맛바람|폐습은 아직도…(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모회사 중역 부인 L씨는 Y국교 2학년짜리 꼬마딸(8)에게『그림 그리기 대회에서 상만 받으면 소원대로 해주겠다』고 달래며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기 싫다는 예술학원에 억지로 보냈다. 학창시절 예술가를 꿈꾸었던 L부인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뜻을 딸에게 실현시킬 목적으로 딸의 재질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꼬마는 용케도 얼마전 덕수궁에서 열린 전국 초·중·고교 사생대회에서 어린이 부문 가작수장을 했다. L부인은 약속대로 어린 딸에게 소원을 물었다. 꼬마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엄마, 이젠 그림공부 그만두게 해줘』라며 왈칵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꼬마는 엄마의 고집이 원망스럽기만 했던 것이다.
사장부인 K씨는 아들P군(18) 의 능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고교1학년 때부터 공부에만 채찍을 가했다. 학교수업이 끝나면 학관에 보내고 집에 돌아오면 3명의 가정교사(주요과목별로 채용됨) 로 부터 밤늦게까지 개별지도를 받도록했다. 그러나 P군의 성적은 오르지 않았고 건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됐다.「경마장의 말몰이」처럼 가해지는 채찍에 견디다 못한 P군은 3학년1학기가 채 끝나기도전에 심한 신경쇠약증에 걸려 학교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런현상은 학벌을 중시한 일제의 잔재일 뿐 아니라 당시보다도 오히려 빗나간 현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른바 「무우즙」·「창칼」파동등 입시제도까지 뒤집어 놓은 치맛바람의 거센 회오리는 중·고교무시험진학 실시이후 한때 잠잠해겼다가 또 다시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방향이 다소 바뀐 것뿐. 전에는 중학입시에 극성을 부렸지만 지금은 반장·부반장등 감투다툼과 예·체능방면의 이른바 천재교육·일류대학 입시경쟁에 열기를 더하고 있다.
자녀를 장식물로 여기거나 남보다 돋보이게 하려는 이같은 일부 극성 자모의 비뚤어진 모정과 허영심에서 빚어지는「신종치맛바람」은 교권을 마구 짓밟기까지 한다.
최근 딸의 성적평가에 불만을 품은 전남목포 B국교의 한 자모가 담당여교사의 머리채를 잡고 폭행한 사건, 아들의 어린이 회장낙선에 기분을 상한부산C국교의 한 자모가 터무니없는 『부정선거』를 이유로 학교측을 고발 하겠다고 위협한 사건등은 교권 유린의 한 예에 불과하다.
치맛바람이 멎지 않는데는 학교와 교사측에도 일단의 책임이 있다.
최근 경기도 모고등학교 교감K씨는 학업성적미달 학생들을 가진급시켜 준다는 조건으로1인당1만∼2만원씩을 받았다가 파면됐고, 전남도내 67개 중학교는 불법부교재「여름공부」 를 학생들에게 배부한 사실이 문교부 자체감사에서 드러나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또 예나 지금이나 학년초가 될 때마다 국민학교 주변에서 자주 등장하는「학년 담임배정」경쟁도 여전하다. 학부모의 관심도에 따라 입시제도 개선 전에는 6학년 담임희망자가 많았지만 요즘에는 1학년담임 희망자가 많아진 것이 달라졌을 뿐이다.
교사들의 학부모에 대한 저자제나 아부풍조도 마찬가지. 서울 모국민교 교사들은 매일 아침·저녁 교실문앞에서서 등·하교하는 아동들을 차례로 끌어안고 「뽀뽀」로써 인사를 대신한다.
이 광경을 지켜본 어느시민은 『교사들의 저같은 지나친 친절이 바로 치맛바람을 불러일으키는 한 요인이 아니겠느냐』고 혀를찼다. 교육학자들은 치맛바람을 완전히 없애려면 학부모는 물론이지만 지도임무를띤 교원 스스로의 올바른 자세정립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오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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