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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형 다국적 기업의 실태|소도청<일본 일교대학 경제학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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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제국주의 시대의 일본은 구주 열강들이 개발한 군함 외교와 식민지 경영을 재빨리 흉내내어 마침내 「아시아」를 휘어잡았다. 그런데 전후 30년을 맞는 현대 수정 자본주의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구미 선진국들이 자원의 득과 독과점 체제의 강화를 위해 창안해 낸 다국적기업이라는 신 기법을 열심히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일교대학 소도청 교수는 「세계경제평론」8월 호에서 그 보상을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편집자 주>
일의적으로 다국적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구미형과 일본형에는 질적인 차이가 발견된다.
이것은 구미 기업의 자본·기술 수준과 일본 기업의 그것 사이에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의미와도 통한다. 실제로 일본의 대표적 대기업인 종합 상사들도 세계 시장의 분할이나 세계적 독과점 체제의 확립을 기도하기에는 너무나 규모가 작다.
따라서 일본의 다국적기업은 다분히 「무역 지향형」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일본 자본이 해외에 직접 투자 형식으로 나가는 것은 원자재 수입권의 확보 및 생산재 수출, 그리고 현지 가공을 통한 재수출이 주목적인 것이다.
이상과 같은 사실을 종합하면 일본형 해외 직접 투자의 특징은 ①사업 규모가 영세하고 ②저개발국을 주 대상으로 삼으며 ③저 이윤을 감내 하거나 실패하는 경우도 많고 ④동기는 무역 지향적인 것 등으로 집약된다.
결국 IBM이나 「빅·드리」(3대 자동차「메이커」)·ITT 등 고도의 자본과 과학기술로 무장하여 공업 선진국을 휩쓰는 미국형 다국적기업과는 천양지차가 있는 셈이다.
더구나 다국적기업을 「6개국 이상에 자회사를 갖고 있는 기업」으로 한정한 「레이먼드·버논」교수(「하버드」대)의 정의에 따른다면 일본의 해외 직접투자는 대개가 자격 미달이 된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일본형 다국적 기업의 영세적 특성을 증명해 주는 얘기일 따름이다. 경제학적으로는 기업 본래의 생산·판매 활동을 2개국 이상에 벌일 경우 그것은 이미 훌륭한 다국적 기업이기 때문이다.
일본의 해외 직접 투자가 이처럼 노동집약적 부문에 집중된 영세 규모라는 사실은 「버논」교수에 의해서도 지적된 바 있다.
「버논」은 일본의 다국적기업은 주도 기업·종합 상사·현지 기업을 한데 묶은 3인4각형인데다 투자 부문도 이미 성수기를 지난 섬유·식품 산업 등이므로 장래성이 없다고 단언했다.
이와 같은 산업은 손쉽게 기술을 습득할 수 있고 자본도 적게 들므로 조만간에 독자적으로 개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다국적기업의 생명선인 독과점 체제의 확립과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는 또 일본 기업들이 해외 시장의 경영을 무역의 연장으로 여긴다고 지적, 이것을 국제 분업적 생산 투자로 이해하는 마음가짐부터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서는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일본의 종합 상사는 세계적 정보망과 막강한 자본 동원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해외 직접투자에 나서는 일본 기업들이 종합 상사를 이용하여 3인4각형을 만드는 것은 매우 교묘한 기법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 기업이 성숙기에 접어든 산업 부문에서 활약하는 것도 반드시 비관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이것은 일본이 이른바 「미국 다국적 기업」을 소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본형 다국적 기업이 당면하고 있는 진짜 문제는 그 장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접 제국에 대한 역할과 영향에 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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