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열매가 익은 뒤에는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성우 스님(팔공산 파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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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흔히 인간 부재의 시대라는 말을 듣는다.
역사란 항상 밝고 어두운 양면성을 스스로 지니고 있듯이 역사를 이어가는 인간 역시 바르고 잘못된 것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다.
모든 범죄란 삼독심에서 빚어진다. 즉 탐내는 탐심과 성내는 진심과 어리석은 치심에서 일어난다. 그러나 그 삼독심을 잘 다스리면 탐심이 변하여 복전이 되고, 진심이 변하여 덕성이 되고, 치심이 변하여 지혜가 된다.
같은 물이라도 소가 먹으면 우유를 낳고 뱀이 먹으면 독을 낳는다.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지만 성인군자가 되기도 하고 잔악 무도한 폭군, 모리배가 되기도 하지 않던가.
흔히 현세를 잘살아 가자면 앞뒤 돌아 볼 것 없이 사리 사욕만 차리면 된다는 생각들을 한다. 어질고 순하고 양심을 지키면 못 산다고도 한다. 어째서 이런 충고 방식이 용납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선의 열매가 익기 전에는 착한 사람도 화를 만난다. 선의 열매가 익은 뒤에는 착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이렇게 저 법구경은 말씀하셨거늘, 어질고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이 못사는 것을 보면 나는 이 법구경의 말씀을 들려주고 싶다.
모든 법(이치)은 인연 따라 일어나고 모든 법은 인연 따라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인연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의지의 힘이다.
소인배는 의지의 힘이 나약한 사람이며 인연에 얽히고 운명의 노예가 되어 살지만 대인은 의지의 힘이 굳센 사람이며 인연을 만들고 운명을 새로 창조하며 산다.
나약한 숙명론자가 되어 팔자나 한탄하고 운명을 저주해 보아라, 그 결과는 무엇일까. 그러나 비록 어렵고 고달픈 현실이라 하더라도 굳건히 참고 참아 이겨 보아라.
어찌 운명이 무릎을 꿇지 않을 것이며 인연의 밝은 서광이 쌓이지 않을 것인가. 양심을 지키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양심의 눈을 감는 일 또한 어렵다. 양심을 지켜 떳떳한 얼굴로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게 얼마나 값지고 귀하며 축복 받아야 마땅할 일인지.
신라의 자장율사는 왕으로부터 나라의 재상으로 부름을 받고 「계율을 지켜 하루를 살다 죽을지언정 파계하여 백년을 살고 싶지 않다』고 수행자로서 양심을 토로하지 않았던가.
마음이 깨끗하면 그 세계가 깨끗하다. 개인 개인이 양심적이면 그 사회는 더 말할게 없다.
인간의 마음은 원래 깨끗하여 때묻지 않아 죄와 복이 없으며 귀하고 천한 게 없으며 크고 작은 게 없으며 죽고 사는 게 없는 청정 여여 하였다.
다만 오랜 시일 동안 지나오며 때가 묻고 악에 물들어 본래 깨끗한 마음을 잃어 버렸다.
그러면 때묻고 더러워 번뇌스런 마음을 다시금 재생시키면 되지 않을까. 그 방법 가운데 선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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