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취재일기

음주·경관폭행 선수에게 면죄부 준 KLPGA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성호준 기자 중앙일보 골프전문기자
성호준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지난해 말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선수회장 이정연이 음주 측정 거부 후 경찰관에게 폭행과 욕설을 한 혐의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KLPGA 상벌위원회는 이정연에게 자격정지 2년, 벌칙금 1000만원을 부과했다.

 징계는 두 달도 되지 않아 솜방망이가 됐다. KLGPA 이사회가 2월 20일 이정연에 대한 자격정지를 2년에서 3개월로 줄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상벌위로 내려보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정연의 자격정지는 3월 22일 만료된다. 2개 대회를 제외하면 이정연은 나머지 대회에 모두 나갈 수 있다. KLPGA는 이정연에게 사실상 면죄부를 준 것이다.

 KLPGA는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알려지자 “이정연의 법원 항소심 결과 집행유예가 사라지고 벌금만 700만원으로 줄어 이에 맞게 협회 징계도 줄이게 된 것”이라고 했다.

 이해하기 어렵다. 이정연에 대한 징계 근거는 협회 상벌규정의 ‘사회정의에 위배되는 행위로 사회에 물의를 야기하거나 회원의 품위를 실추시킨 경우’다. 징계 수위는 ‘6개월 이상 5년 이하 자격정지’라고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상벌위는 규정에 맞게 징계했다. 이사회에서 이를 확 깎아버렸다. 익명을 요구한 상벌위 관계자는 “위에서 내린 가이드라인을 따랐지만, 상벌규정의 최소한 원리원칙은 지켜달라고 이사회에 건의했다”고 말했다.

 형평성도 문제다. 이정연의 징계는 2경기 출장 정지+벌칙금 1000만원이다. 그와 함께 징계를 받은 A선수가 있는데 경기 중 심판과 말다툼을 벌여 3경기 출장 정지에 1000만원 벌칙금을 받았다. KLPGA 소속 한 선수는 “안 그래도 이정연 때문에 창피한데 그렇게 빨리 경기에 출전시켜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정연은 2013년 경기 출전권이 없었다. 이사회는 그가 선수회장이라며 출전권을 주기로 했다. 그 때문에 한 선수가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골프 선수에겐 출전권이 매우 중요하다. 이정연으로서는 엄청난 특혜를 받은 셈이다. 선수회장이 사고를 내면 협회의 명예가 실추된다는 걸 모르지 않았을 텐데 음주와 경찰 폭행 사건이 법원 판결로 알려질 때까지 8개월간 사퇴하지 않았다.

 서울대 체육교육과 임충훈 교수는 “프로스포츠 선진국에서는 선수의 일탈 행위 시 상벌규정에 따라 철저히 징계를 한다. 스포츠의 생명인 공정성이 무너질 경우 리그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직과 에티켓이 중요한 골프는 더욱 그렇다.

성호준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