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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의 부조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민폐 시정에 관한 국무회의 지시 사항』을 각시·도교위에 이첩하면서 24일 문교부가 밝힌 교육계 부조리 현상의 유형을 보면 착잡한 심정을 자아낸다.
주로 교육청 산하 공무원과 관련된 경리부정·업자와의 결탁·출장비 부정 등 사례는 잠깐 차치하고서라도 직접 교단에 선 교사들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각종 부조리 현상을 보면, 한나라의 도덕적 모태라 할 수 있는 교육계마저가 헤어나기 힘든 불신의 대상이 될 우려가 짙기 때문이다.
이번 문교부가 지적한 것 중에는 교감직에 있는 중견 교사가 학업 성적 미달 학생들로부터 「가진급」 명목으로 금품을 사취한 것 등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비행의 사례도 있으나 그 대부분은 이른바 학원 잡부금과 관련된 것들이다.
얼마전 모도 교육위가 자체 조사한 사례만 하더라도 이 나라 교육계에는 4개 유형 26종의 부조리 현상이 만연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된 일이 있다. 그 대부분은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묵시 아래 거의 공공연하게 저질러지고 있는 부조리 현상이다.
분석된 4개 유형중 인사 청탁과 이를 빙자한 금품 수수 등 주로 인사에 관련된 부정을 비롯하여 기관 경비의 변칙 조달, 납품 및 도급업자와의 부정 결탁 사례 등 세가지 유형은 전적으로 교육 행정 관리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는 비행으로서 실상 오늘날 교육계 부패의 근원은 여기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육계 부조리 현상의 또 한가지 유형인 이른바 학원 잡부금 징수와 관련된 비위는 대개의 경우 규모가 하찮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대상 인원이 광범위하다는데서 그만큼 원성도 확산되는 것이다.
운동회·학예회·졸업식·수학여행 등 학교 행사를 빙자한 금품수수 행위를 비롯하여 학생복장·신발·부교재·보습용 자료 등의 알선 및 강매 행위 등이 바로 그것들인데, 이를테면 코 묻은 돈을 우려내고 있는 셈이다.
물론 개중에는 거액의 학생 공납금을 가로채 사사로운 용도에 유용하거나 횡령함으로써 이미 형사 입건된 몇몇 사학 관계자라든지, 눈에 거슬릴 만큼의 전시 효과를 위해 거액의 찬조금 등을 거둬들여 큰 물의를 일으킨 학교 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위에서 지적된 대부분의 부조리 현상들은 기실 그 행위자 자신들까지도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또한 일상적으로 저질러지고 있다는 점에서 엄벌 방침 시달이나 무조건 비난으로 일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공사립을 불문하고 오늘날 한국의 모든 학교들은 인사·재정·학사 운영의 모든 부문에 걸쳐 거의 아무런 자율성도 발휘할 수 없을 만큼 관으로부터의 심한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은 상황하, 그것도 극히 비현실적으로 짜여진 학교 예산을 가지고서 조금이라도 진취적인 교육 활동을 해보겠다는 의욕을 가진 학교라면, 액수의 다과를 물론하고 이른바 학원 잡부금과 관련 된 「부조리」를 면할 수가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신설된 모 공립여학교에서 이러한 부조리의 적발이 두려워 교실의 「커튼」하나, 교회 내외의 미화작업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황량한 교육환경을 방치하고 있음을 볼 때 이른바 학원 부조리 문제의 「아이러니컬」한 단면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수천명의 학생과 수십 학급을 가진 학교에서 인건비를 제외한 수용비 총액이 월액 고작 3만원(국민교), 9만원(중학교), 14만원(인문고) 내외라는 비현실적 예산 책정의 모순을 제도적으로 해소하고 교사가 제자 앞에서 직접 손을 벌이지 않아도 좋을 만큼 교사들의 처우를 현실화하는 것만이 사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오늘날 너무도 관의 일률적인 규제 하에 놓여있는 각급 학교의 학사 운영에 가능한 한 폭 넓은 자주권을 회복케 하는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응용 원칙에 따른 교원 인사 제도를 확립하고, 지역 사회의 실정에 맞는 학교 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제도적으로 보강함으로써 이른바 교단 부조리 현상이 일어날 소지를 근원적으로 배제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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