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닭' 싣고 평택~경주 300㎞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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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시 공무원과 군인·경찰 570여 명이 9일 천북면 일대 양계장의 닭을 살처분하러 가고 있다. 이 지역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가 나온 데 따른 것이다. 지난 4일 경기도 평택시에서 옮겨 온 닭이 문제였다. 살처분 대상은 총 50만 마리로 9일까지 모두 12만 마리를 처리해 묻었다. [프리랜서 공정식]

조류인플루엔자(AI) 방역체계에 구멍이 뚫렸다. AI에 걸린 닭을 실은 차가 경기도 평택시에서 경북 경주시까지 약 300㎞를 이동했는데도 방역에 걸리지 않았다. 이로 인해 AI가 없었던 경북 지역에까지 바이러스가 번져 닭 50만 마리 살처분이 진행 중이다.

 9일 경북도 AI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경주시 천북면 농장의 닭에서 AI바이러스(H5N8)가 검출됐다. 이 농장은 지난 4일 AI 발병 지역인 경기도 평택의 농장에서 중간 크기 닭 5200여 마리를 들여오면서 AI에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닭이 평택에서 경주로 옮겨갈 때 평택시 방역당국은 “아무 이상 없다”는 가금류 이동승인서를 발급했다. 이동승인서는 닭·오리 같은 가금류를 옮길 때 해당 농장에 들러 설사를 하지 않는지, 힘이 없어 보이지 않는지 같은 전염병 의심 증상을 눈으로 확인한 뒤 내주는 증명서다. 평택시는 일단 이상이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닭들은 운송 과정에서 10여 마리가 폐사했고, 농장에 도착한 직후에 또 20마리가량이 죽었다.

 경주시는 “승인서 발급을 위한 관찰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조사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에 대해 평택시 측은 “검사 당시 해당 농장에는 폐사한 닭이 없었고, 볏에 푸른 빛이 도는 등의 AI 사전 징후가 보이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농림축산식품부 또한 “AI는 폐사 직전까지 별다른 징후가 없어 육안 관찰만으로 가려낼 수 없을 때가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 해명은 스스로 방역체계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육안으로는 가려낼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도 AI 발생 농가에서 3㎞ 이상 떨어져 있으면 닭·오리 이동제한을 하지 않고 육안 검사만 통과하면 옮길 수 있도록 해놨기 때문이다. 평택 농가가 바로 이런 경우였으나 결과적으로 300㎞ 떨어진 지역까지 AI를 옮겼다. 이와 관련, 농식품부 측은 “가금류 이동에 대한 방역 강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의호·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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