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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한 어머니 기도처럼 … 다시 읽는 기형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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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6일 기형도 추모문학제에서 공개된 영상. 시인의 어머니가 아들의 글을 많은 사람이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늘 그랬다고 한다. 열무를 팔아 생계를 꾸렸던 어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담은 기형도의 시 ‘엄마 걱정’도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 중 하나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네가 떠나던 날은 월요일이었다. 출근하던 뒷모습이 눈에 선하다. 너는 ‘엄마는 왜 출근할 때마다 내가 안 올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느냐’고 물었지. 네가 가고 안 오던 날 나는 밤새도록 기다렸다. (중략) 가끔 네가 돌아올 것처럼 생각날 때가 있단다. 너는 ‘내가 쓴 글을 많은 사람이 봤으면 좋겠어요’라고 했지. 내 아들 형도의 글을 많은 사람이 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시인 기형도의 25주기 추모문학제가 열린 6일 경기도 광명시민회관. 기형도를 기억하는 600여 관객이 가득한 행사장에 아들이 집을 나서던 25년 전의 그 날을 떠올리는 어머니 장옥순씨의 떨리는 목소리가 잔잔히 퍼졌다. 기형도는 어머니의 배웅을 받고 집을 떠난 다음 날인 1989년 3월7일 화요일 새벽, 서울 종로의 한 심야영화관에서 세상을 떠난 채 발견됐다.

이날 행사에서 소리꾼 장사익씨가 이 시에 곡을 붙인 노래를 관객에게 들려줬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가 깃들 새 집인 기형도 문학관의 건립 계획이 발표되고, 그의 옛 사진과 함께 무대 화면 위로 ‘기형도 1960. 3.13~1989.3.7’란 글자가 떴다. 25년. 그가 떠난 뒤 이만큼의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는 그를 잊지 않았다. 잊을 수 없었다. 시인의 바람대로,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처럼 그의 시와 글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곁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며 유고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은 26만5000부가 팔렸다. 그의 10주기인 89년에 그의 시와 산문·소설 등을 묶어낸 『기형도 전집』(문학과지성사)도 6만여 부 팔렸다. 두 권의 책은 지금도 교보문고의 시 베스트셀러 순위의 2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에서도 그의 시집이 번역 출간됐다.

 그의 시집은 청춘의 통과의례와 같았다. 유년기의 우울한 기억과 가족, 사랑과 도시인의 삶 등을 허무주의적으로 그려낸 그의 시에 젊음은 열광했다. 29살에 삶을 등진 요절 효과까지 더해지며 ‘기형도 신드롬’은 신화가 됐다. 그의 친구인 문학평론가 이영준은 “기형도의 시에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의 감성이 많다. 윤동주와 같은 맑은 영혼에 주어진 아픔이 형도의 시에도 들어 있어 젊은 사람과 젊은 시인에게 어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시에는 죽음과 상실의 이미지가 강하게 드리워져 있지만 기형도는 따스하면서도 예술적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중앙일보 기자로 일했던 시인이 자신에 대해 사보에 썼던 글은 ‘인간 기형도’를 한눈에 드러낸다.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안개‘로 당선한 시인이자, 유머 감각이 탁월한 독설가…. 문화부의 가수이며 만화가. 순발력 있는 공상가.’

 연세문학회에서 함께 지냈던 절친인 소설가 성석제는 그에 대해 “실제로는 따뜻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노래를 잘 부르고 그림도 잘 그렸다”고 말했다.

 그를 기억하는 추모문학제의 부제는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였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로 시작하는 그의 시 제목이다. 그 시는 이렇게 끝난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들이여’라고. 시인은 자신을 찾지 말라 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자취가 너무 짙은 탓에, 그 부탁을 들어주기는 어려울 듯하다.

글=하현옥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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