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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공갈단」위계에 말려 200여명 폭력배 누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자해공갈단」의 위계에 말려들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폭력죄의 누명을 쓴 선량한 시민 2백여명이 뒤늦게 검찰에 의해 혐의를 벗게되었다. 서울지검 공판부(이영욱 부장검사)는 27일 자해공갈단에 걸려들어 치료비룰 뜯기고도 오히려 폭행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어 재판에 회부된 장해일군(20·연대 요업과4년)등 5명에게 공소취소를, 서울형사지법에서 무죄가 선고된 한정남씨(29)등 2명에게 항소포기를, 검찰에 계류중인 30여명에게 무혐의결정을, 구속 기소된 20명에게 재심청구를 내리고 나머지 1백42명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검찰이 이같이 기소를 했다가 미리 무혐의성을 발견, 스스로 대폭 공소취소를 한 예는 극히 드문 일이다.
이는 폭행사건에 대한 수사의 헛점과 의사의 진단서발부 등에 큰 문젯점을 던졌다.
지난25일 서울지검 공판부 송인준 검사가 공소취소를 함으로써 1년만에 폭행전과를 씻게된 연세대생 장해일군과 남윤재군(20·법학과4년)은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며 악몽 같은 그간의 과정을 털어놨다.
장군과 남군은 작년8월15일 밤10시쯤 술을 마시고 서대문구 창천동30번지 앞길을 걸어가다 자해공갈단 김창석(20)등 4명과 부딪쳤다. 공갈단들은 다짜고짜 장군의 와이샤쓰를 찢고 멱살을 잡으며 시비를 붙었다.
화가 난 장군이 김을 붙들고 창천파출소로 갔으나 김은 오히려 『팔이 부러졌다』며 어느 사이 인근 정형욋과에서 전치4주의 상해진단서를 받아왔다.
그날 밤을 꼬박 파출소에 붙들려있던 장군 등은 다음날 서대문경찰서에 넘겨져 조사를 받고 구속만은 면하기 위해 도리어 공갈단에게 13만원을 주고 연대학생처장의 보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두 학생은 작년10월 자해공갈단이 검거되었음에도 약식 기소되어 법원으로부터 벌금7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 두 학생은 법원에 정식재판을 청구, 뒤늦게 이 사실을 밝혀낸 송인준 검사가 공소를 취소함으로써 서울형사지법 박준서 판사가 공소 기각판결, 누명을 벗고 풀리게되었다.
장군은 서대문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 경관에게 뺨을 맞으면서도 혐의내용을 부인했으나 공갈단이 제출한 진단서만을 믿는 경찰관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두 학생은 부모님과 친지들에게 꾸중을 들으며 대학생신분으로 1년동안 수사기관에 불려다녀야만 했다.
한편 서울지검 공판부 유창종 검사는 공판도중 전국 15개파 자해공갈단이 모두 5백여명에게 범행, 5천여만원을 뜯어낸 사실을 밝혀내고 여죄에 대해 추가기소를 검토중이다.
또 이들 5백여명 피해자들 중 2백여명은 장군의 경우처럼 공갈단의 위계에 휘말려 오히려 폭행혐의로 입건, 또는 기소되어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검찰은 공소취소·항소포기 등을 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번 자해공갈단 수사에서 ①폭행사건의 경우 경찰이 피의자(선의의 피해자)들의 변소를 위압적으로 묵살한 대신 「자해공갈단」의 엄살만 인정 ②공갈단이 떼온 진단서가 대부분 당해경찰서와 특약관계에 있는 병원의 것이었으며 ③진단서를 발부한 의사들이 공갈단이 상처를 입은 시간을 무시했으며 ③피해자들의 권리의식이 희박, 쉽게 공갈단에게 돈을 주고 합의하는 등의 문젯점을 지적했다.

<전국에 15개파>
자해공갈단은 전국에 15개파(1백50명)가 있는데 이중 11개파가 서울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의 11개파 중 「목발이 강파」(두목·강병수) 「이곤이파」(이곤) 「창영이파」(강창영) 「추봉이파」(이추봉)등 9개파는 구속됐으며 「전탁이파」(전탁) 「규석파」(손규석)등은 수배중이다. 이들은 「당직」(상처입고 시비하는 사람) 「탁선생」(당직 몸에 상처내는 사람) 「고신이」(신고역할) 「수습세미」(사고 후 친척을 가장해 합의보는 사람)등으로 세분되어 주로 밤거리 취객이나 자가용자동차 및 버스 문에 억지로 부딪쳐 진단서를 제출하고 경찰에서 합의하는 수법을 쓰며 돈을 뜯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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