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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깊은 악단과 젊은 지휘자 하딩 그 화학반응이 궁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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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호 24면

전통을 이어가는 신사의 품격이다. 중후하고 충실하며 직선적인 사운드다. 앰프에 따라 다채롭게 변하는 영국제 모니터 스피커처럼 지휘자의 색채와 개성을 착색 없이 그대로 표현한다. 우리나라 음악팬들의 지지를 듬뿍 받고 있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 얘기다.

런던 심포니 내한 공연 10~11일 … 김선욱 피아노 협연

런던 심포니가 2012, 2013년에 이어 3년 연속 내한공연을 갖는다(3월 10일, 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게르기예프·하이팅크에 이어 이번에는 스웨덴 방송교향악단의 음악감독 다니엘 하딩이 지휘봉을 잡는다. 런던 심포니는 3년 연속 서로 다른 지휘자로 내한공연을 갖는 오케스트라로 기록된다. 첫날엔 무소르그스키 ‘민둥산의 하룻밤’과 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가 연주되며,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협연하는 둘째 날에는 말러 교향곡 1번이 메인 프로그램이다.

지금은 ‘젊은 지휘자’ 하면 ‘엘 시스테마’로 세계를 강타한 구스타보 두다멜이 생각난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청년 지휘자로 음악팬들 사이에 강하게 각인됐던 이는 다니엘 하딩이었다. 사이먼 래틀과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하딩에게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2006년 다니엘 하딩이 말러 체임버를 지휘한 내한공연은 ‘인디언 서머’ 같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봄날에 들떠 홍조 띤 소년 같았던 하딩은 깔끔하고 투명한 모차르트 교향곡, 성실하게 낭만성을 살린 슈만 피아노 협주곡(라르스 포그트 협연), 밝고 빨랐던 브람스 교향곡 2번이 인상적이었다. 그날 하딩을 지켜보면서 느꼈지만 지휘의 스타일을 안전운행과 모험가로 나눈다면 하딩은 모험주의자임이 분명했다.

교향곡에서는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유지한다. 음량이 작다는 선입견이 있는 실내악의 울림을 강조해 방점을 찍거나 금관 속에 잠재된 야성을 이끌어낸다. 박자만 맞추고 목적지까지 안락한 운행 대신 상식을 넘는 도약과 마법과 같은 화학반응을 통해 롤러코스터같이 예측하지 못한 국면을 선사한다. 청년 지휘자들에게 배타적인 런던 심포니이지만 다니엘 하딩은 2006/07 시즌부터 런던 심포니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꾸준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까다롭고 보수적인 런던 심포니가 하딩에게만큼은 예외적으로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내고 있는 이유를 이번 내한 무대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브루크너는 슈베르트의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말러는 체코의 전통에 그 뿌리를 두고 있죠. 코랄과 먼 옛날의 특질을 가지고 있는 브루크너의 음악과는 반대로 말러의 음악은 세속적이고 직접적인 감정과 관련 있죠. 많은 면에서 이 두 작곡가는 완전히 반대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브루크너의 조상 격인 슈베르트를 연주하는 첫날과 말러를 연주하는 둘째 날은 사뭇 대조적이다. 이 두 곡이 기둥이라면 첫날의 무소르그스키와 스트라빈스키, 둘째 날의 프로코피예프 작품은 화려한 지붕과 서까래에 해당할 것이다. 독일 음악의 횡적인 씨줄 위에 러시아 음악의 역동성이 날줄을 이루는 공연이다.

하딩이 우리나라에 왔던 2006년, 피아니스트 김선욱은 리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이후 그는 런던을 본거지로 내공을 다져 왔다. 런던에 살며, 독일 음악이 장기이지만 러시아 레퍼토리에서도 견실한 해석을 보여온 김선욱은 그 어떤 피아니스트보다도 런던 심포니의 이번 공연에 잘 어울리는, 믿음직한 협연자가 아닐 수 없다.

“사랑하기에 음악을 합니다. 음악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욕구지요.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죠. 음악을 듣고 영감을 받습니다. 지휘하며 그 영감을 나눌 때 음악은 비로소 살아 숨쉬게 됩니다.”(다니엘 하딩)

최근 런던 심포니의 내한공연만 놓고 볼 때 게르기예프가 이질적인 요소로 런던 심포니의 전통을 어느 정도 파괴했다면, 하이팅크는 보수적으로 전통을 옹호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하딩은 어떨까. 영국 지휘자의 보수성과 젊은 지휘자의 혁신성을 모두 갖춘 그이기에 흥미로운 제3의 해석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기 직전에 따뜻한 날이 계속되는 ‘인디언 서머’처럼 지휘자가 공유하는 영감과 예측 불허의 패기는 악단의 유구한 전통을 긴장시키고 흔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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