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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자유를 잃은 북한 주민 … 그들은 무슨 꿈을 꿀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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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고아원 원장의 아들
애덤 존슨 지음
김정희 옮김
아산정책연구원
708쪽, 2만2000원

‘존 도(John Doe)’. 한국의 ‘홍길동’처럼 영어권 언론에서 신원 미상의 인물을 지칭할 때 쓰는 이름이다. 미국 소설가 애덤 존슨(47)의 눈에 북한은 2400만명의 ‘존 도’가 살고 있는 나라였다. 몸은 존재하되 ‘자아’가 없는 이들, 국가의 철저한 통제 속에서 스스로 삶을 선택할 자유를 박탈당한 사람들. 북한을 배경으로 한 소설 『고아원 원장의 아들(The Orphan Master’s Son)』의 주인공 이름은 그래서 ‘박준도’가 됐다.

 소설은 고아원 출신 준도가 일본 해변에 잠입해 일본인을 납치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정권의 기계가 되어 납치범으로, 선원으로, 비밀요원으로 세계를 떠돌던 준도가 선문이라는 여배우를 사랑하게 되면서 ‘나’라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이 소설은 2012년 미국에서 출간된 후 큰 반향을 일으켰고, 지난해 미국 퓰리처상 소설 부분을 수상했다. 퓰리처위원회는 “독자들을 전체주의 국가인 북한의 깊숙한 곳으로 여행하게 하고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감정 속으로 이끄는 작품”이라 평했다.

 최근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한국을 방문한 저자를 6일 만났다. 그는 “북한에 대한 정치적·이념적 접근이 아닌,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적 초상화(Psychological Portrait)’를 그리고 싶었다”고 했다.

존슨 교수는 “소설 속 모든 캐릭터를 자유를 추구할 권리가 있는 ‘살아 숨쉬는 인간’으로 그리려 했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고아원 원장의 아들’이란 제목이 독특하다.

 “책을 쓰기 위해 처음 탈북자를 만났을 때, 가족을 잃고 홀로 배고픔에 시달렸던 사연, 살아남기 위해 도둑질을 했던 이야기 등을 들었다. 그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았다. 북한의 김씨 일가는 자신들이 ‘모든 인민의 아버지’라고 한다. 하지만 부모라기보다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방치하는 책임감 없는 고아원 원장이다. 북한 주민들은 부모와 원장에게 버림받은 고아들이고.”

 -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2004년 요덕수용소 출신 탈북자 강철환씨의 자서전 『평양의 수족관』을 읽었다. 그때까지 한반도에 관심이 없었고, 이런 시대에도 정치범 수용소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이후 데이비드 호크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위원의 『감춰진 수용소(Hidden Gulag)』를 읽으며, 북의 실상을 접하게 됐다.”

 - 이 작품은 첩보 소설이자 사랑 이야기인 동시에 준도라는 인물의 성장담이다.

 “북한 사람들은 꿈을 가질 수 없다. 소설 초반 준도는 자신의 욕망과는 관계없이 상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하지만 외부 세계를 접하고, 수용소를 거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자유를 향한 강한 욕망을 갖게 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심한다.”

 - 북한 사회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놀랍다.

 “2005년부터 탈북자들을 만나고 다양한 책을 읽고 ‘노동신문’도 6년간 정독했다. 2007년 취재차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사건이나 도시 풍경은 꽤 사실적이라고 본다. 특히 중간 중간 나오는 북한 선전방송 내용은 노동신문의 과장된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찾아보면 북한을 알 수 있는 통로는 많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런 정보를 접할 수 없다고 들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보는 위험한 것이 아니다.”

 『고아원 원장의 아들』은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보다 등장인물 간의 반복된 대화를 통해 북한 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내면을 그린다. 수용소 풍경 역시 “철제 지붕에서 나는 구슬픈 웅웅거림과 못에서 나는 삐걱임, 침상에 누운 사람들의 뼈가 뻣뻣하게 굳어 가는 소리” 등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 보다 직접적으로 북한 사회를 고발하는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북한에서, 특히 수용소에서 얼마나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다. 고문과 학대, 단체 총살 등은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은 정말 끔찍한 일을 당했을 땐 눈물도 흘릴 수 없다. 북한 뿐 아니라 르완다나 콩고 등에서 인간으로서 당해서는 안 될 일을 겪은 사람들은 자신의 사연을 분절화(fragmentation)해 이야기한다. 과거와 현재를 왔다갔다 하고, 고통을 당한 객체 역시 ‘나(I)’였다가 ‘그(He)’로 변하기도 한다. 수용소의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하기보다,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들의 정신적인 상태, 그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

 - 세계 29개국에서 출간됐다.

 “사람들이 그만큼 북한을 궁금해 한다는 이야기다. 처음 이 소설을 쓸 땐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는 백인 남성인 내가 북한에 대해 무엇을 안다고 소설을 쓰는가’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다양한 국가의 더 많은 사람이 북한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 북한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북한의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김정은 정권을 어떻게 보나.

 “나는 북한 전문가는 아니다. 단지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藤本健二)나 황장엽씨 등의 글을 보면 김정일은 아주 의심이 많았던 인물로, 끊임없이 부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했다. 김정은은 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자랐다. 지금 그의 종잡을 수 없는 행동과 위험한 도발 역시 주변인을 시험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

 - 한국은 첫 방문인데.

 “아주 아름답고 안전한 나라다. 내가 사는 곳에서는 한국처럼 밤에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없다. 한 가지, 사람들이 휴대폰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하철을 탔는 데 다들 휴대폰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더라.”

글=이영희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애덤 존슨은 ●1967년생.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와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문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했다. 현재 스탠퍼드대 영문과 교수로 있다. 사회의 변방에 고립된 개인에 대한 작품을 주로 써왔다. 단편집 『임포리엄(Emporium)』, 장편 『우리 같은 기생충(Parasites Like Us)』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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