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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7) 제46화 세관야사(1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밀수와 상부압력>
필자가 군산세관장으로 있을 때만 해도 세관은 어수룩했었다.
내가 군산세관장으로 부임한 것은 1947년2월1일자였다. 나는 운이 좋게 복직할 수 있었고, 곧 세관장의 보직을 받았다.
복직과정을 보면 해방직후 세관직원이 크게 모자란 것을 알 수가 있다.
1946년3월 월남, 5월에 서울 남대문파출소 옆에 있던 세관중앙본부로 세관과장 김순식씨를 찾아갔으나 『사람을 더 쓰지 않는다』는 냉랭한 대접을 받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이듬해인 47년1월 세관과 간부직원을 공개 모집한다는 신문공고가 났다.
논문과 상식고사를 거쳐 구두시험을 치렀다.
당시 세관과장 남궁 박사가 구두시험장에서 즉시 채용해주었다.
같이 채용된 사람은 남옥현·조원하·고하철 등 모두 27명이었다.
나는 전력이 참고되었는지, 채용된 지 불과 며칠만인 2월1일자로 「임 행정관, 보 군산세관장」이라는 재무부장의 발령을 받았다.
부임당시 군산세관에는 조?경·최옥진·황금룡 등 직원 20여명이 있었으나 감시선은 없었다.
47년12월 중국정크 5척이 면포·설탕·염료·사카린 등을 싣고 군산에 입항했을 때 벌어졌던 일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군산시장 박 모씨를 비롯해서 지방유지들이 주동이 되어 이 정크단을 위해 환영연회를 베풀어주는 법석을 떨었다.
지방유지 조 모·권 모씨 등은 시장과 권력기관을 동원하여 『군산발전을 위하여 적당히 통관해줄 것』을 부탁해왔다. 그러나 대외무역규칙상 상무부 무역국장의 허가 없이는 세관단독으로 통관을 해줄 수 없게 되어있었다.
그런데도 군산항에 주재하고있던 상무부 무역주재관 박영상씨가 무역협회 군산지부장과 한패가 되어 상무부측은 자기가 책임질테니 통관해주자고 계속 졸랐다.
세관에서는 끝끝내 무역국장의 허가서를 가져오지 않으면 통관시켜 줄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다.
통관여부를 놓고 왈가왈부하기 10여일째였다.
이의석이라는 사람이 수입허가서라고 가지고 와 통관을 하겠다고 했다.
중앙에서 보내온 무역국장의 인감과 이씨가 가져온 수입허가서에 찍힌 도장을 대조해보았더니 위조 수입허가서였다.
이씨를 즉시 검찰청 군산지청에 고발하고 위조허가서와 함께 이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어찌된 일인지 이씨가 며칠이 지난 다음 세관장실에 나타났다.
『잘 보아주어서 고맙다』고 비꼬는 것이 아닌가.
결과는 뻔했다. 무역주재관과 군산시장·지방유지들이 여러번 서울에 왔다갔다하는가 싶더니 48년2월 수입허가가 났다.
허가조건은 수입품가운데 설탕·면포·염료 등 일부품목에 한해서 말린 해삼·말린 새우·인삼 등을 대상 수출시킨다는 것이었다.
허가품목이외의 수입품은 모두 반송키로 결정되었다.
정크가운데 일부는 대상수출품을 싣고 중국으로 돌아갔으나 일부 배는 인천방면으로 갔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불법 반입될 것으로 보고 감시선을 출동시켜 추적에 나섰다.
반송된 물품의 대부분이 이미 서울과 기타지방으로 분산 반입된 것을 알아냈다.
약 1백만원 상당의 현품이 강경 방면에서 압수되었고 은닉보관책인 중국인 서 모를 검거할 수 있었다.
군산세관은 압수품을 몰수하기로 하고 처벌책을 중앙에 건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어떤 영문인지 『벌금 5만원만 받고 현품은 돌려주라』는 중앙의 지시가 내려왔다. 세관으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안가는 처사였다.
필자는 중앙의 지시에 승복치 않기로 결심하고 서울에 출장, 감시책임자였던 신태억씨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신씨는 『당신의 의견이 옳다. 그러나 미 고문관 스미드가 응하지 않으니 별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스미드를 찾아가 똑같은 이의를 제기했으나 『연합국인(중국인)을 그렇게 가혹하게 처벌할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
이에 상부의 지시는 전적으로 부당한 것이라 지적하고 『이런 식이면 밀수단속은 하나마나』라고 항의했다.
필자를 쏘아보던 스미드는 『당신에게 내린 지시는 미 군정장관의 명령이다. 만일 불복하면 명령불복종으로 군정재판에 회부하겠다』고 위협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사건이후 군산항에 중국무역선이 들어오지 않게 되자 지방발전에 방해가 된다며 세관장을 쫓아내라는 이야기까지 나을 정도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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