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에 몰린 일본의 등거리 곡예외교…「패권」문제로 진퇴 어려운 딜레머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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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경분리」 「등거리 외교」 「평화헌법」 등으로 표현되어온 일본의 기회주의적 외교가 최근 여러 방면으로부터 확고한 방향설정을 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가장 즉각적인 압력은 일본의 대 중공·대 소련 관계개선 과정에서 야기된 소위 「패권논의」이다.
패권논의란 중공외교의 한 원칙으로서 72년2윌 「닉슨」·주은래 간의 상해공동성명과 해 9월 전중·주 공동성명에서 다같이 명시되어있는 『양국은 「아시아」에 패권을 확립하려는 어떤 나라나 집단의 기도도 이를 반대한다』는 귀절이다. 「패권반대」는 「아시아」에서 비 「아시아」 세력인 소련과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중공의 강렬한 의도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일·중공 우호조약을 협상하고 있는 일본은 이 조약에 「폐권조항」을 삽입하자는 중공의 강력한 요구를 받고 엉거주춤하고 있다.
이유는 동류의 조약체결협상을 벌이고 있는 소련이 이에 완강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은 만약 일·중공이 우호조약에서 「패권반대」조항을 삽입한다면 이는 일본과 중공이 야합해서 소련을 겨냥하는 것을 뜻한다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본은 지금까지 이 조항을 명기하지 않고 양해사항으로 문제를 타결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 왔지만 중공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쳐왔다. 그러던 중 최근 중공을 방문한 일본 사회당대표단이 중공 측과의 공동성명에서 일·중공 우호조약에 패권조항을 명기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해서 문제가 다시 확대되고 말았다.
소 공산당기관지 「프라우다」와 「타스」통신은 이같은 내용이 담긴 공동성명에 대해 「큰불만」을 표했다.
이렇게되자 일본은 조만간 패권논의에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는데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중·소 양국 중 어느 하나와의 관계개선을 보류 내지 포기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와 시기를 같이해서 미국으로부터는 월남이후에 「아시아」지역 방위에 일본이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해야된다는 압력이 들어오고 있으며 동남아의 탈 미국, 독자외교바람이 성숙해 감에 따라 이에 대처해야하는 일본자체로부터의 압력에도 직면해있다. 「패권논의」는 경제적 실리만을 지상명제로 삼는 모호한 외교 뒤에서 안주할 수 있었던 시대가 급속히 막을 내리고 있다는 신호임이 틀림없다. <김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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