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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깊이보기] 성폭력 피해아동을 위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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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오히려 선정적이라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간혹 있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는 이유로 자극적인 영상을 보여주는 데 치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사 고발 프로그램의 본령은 단순히 사건의 경과를 보여주는 데 있지 않다. 진상 규명은 물론 해결책이나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프로그램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2일 밤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사진)는 시사 고발 프로그램의 전형을 보여준 사례로 꼽을 만하다. 이날의 주제는 '법이란 이름의 폭력-성폭행 피해아동의 인권 침해'였다.

제작진은 목격자와 뚜렷한 물증이 없는 아동 성폭행 사건에서 거의 유일한 증거인 피해 아동의 증언이 무시되는 현실을 만 3년5개월 된 한 어린이의 사례를 통해 조목조목 짚어냈다.

특히 경찰서 내부의 공개된 자리부터 검사와 판사 앞에 이르는 10여차례의 진술 과정이 피해 어린이들에게 얼마나 악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신빙성을 의심하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지 잘 보여주었다.

미국과 영국의 사례는 좋은 대비가 됐다. 피해 어린이들의 최초 진술 현장에 경찰은 물론 아동심리 전문가.정신과 의사 등이 함께 참석하고 경찰은 필요한 질문을 즉석에서 추가한다는 것, 어린이들의 진술은 한 번으로 제한되며 모든 과정이 비디오로 녹화돼 증거능력을 인정받는다는 것 등이다.

"아이들은 자신이 한 번 한 이야기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다음 번에는 그와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된다"는 미국의 아동심리 전문가의 지적은 진술이 일관되지 않으면 신빙성이 없다고 처리해온 우리 법조계의 자세가 얼마나 무신경한 것이었는지 깨닫게 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경찰과 검찰과 법원이 보여준 태도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비디오 촬영장비가 없어서, 관행이 없어서 못한다"는 것이다.

법조계가 진심으로 존경받기 위해서는 정치 권력에서 자유로워야 함은 물론, 힘없는 약자를 보호하는데 더욱 힘써야 한다는 진리를 이 프로그램은 보여주었다. 제작진의 외침이 일회성 방송용으로 끝나서는 곤란하다. 이들이 제시한 대안이 한심한 현실을 바꿀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지켜보아야 하는 이유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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