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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 이후의 북한 권력 구조|서독의 유력지에 게재된 『김일성 왕국으로의 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서독의 유력지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차이퉁」지는 29일 『김일성 왕국으로의 길』이라는 표제로 북괴의 후계자 선정 문제를 비판하는 장문의 기사를 게재했다. 다음은 본사 엄효현 「베를린」 특파원이 보내 온 이 기사의 전문이다. <편집자 주>
모든 공산국가 중 북괴는 서방 국가에 가장 미지의 나라다. 평양 정권은 계속 세계로부터 격절되어 오고 있다. 서방 인사들이 북괴를 방문하는 것은 극소수뿐이다. 이들에게 공개되는 북괴상은 표면적이며 천편일률이다.
통치 방식이나 선전을 보더라도 중세 전제주의를 방불하는 경직화된 「스탈린」유의 전체주의 사회상이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북괴처럼 군비에 주력하는 나라도 찾아보기 힘들다. 적대적이라고 규정된 것은 무엇이든 호전적으로 매도하고 조직적으로 증오심을 키우도록 하는 것이 북괴의 끈질긴 선전 「캠페인」의 시발점이자 목표이기도 하다. 이러한 선전의 동기나 이유는 한반도는 공산주의에 의해 통일되어야 한다는 명제로 귀결된다.
이러한 정책을 추진하는 인물이 북괴 공산당의 지도자 김일성이다. 북괴 정권이 수립된 지 30년 동안 그는 최고의 권좌에 앉아 무자비하게 자신에 대한 경쟁 가능성을 제거하며 독재자의 지위를 굳혀 왔다. 중공에서는 문화 혁명 기간 동안 「스탈린」이나 모택동에 대한 숭배가 퇴조한 반면 김일성은 자신에 대한 개인 숭배를 강화해 왔다.
스스로를 신으로 추켜 올리고 북한 전역의 도시나 마을에 실물 대동상을 세우도록 한 이 남자는 최근 자신의 권좌를 한층 강화했다. 이 작업은 72년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는데서 비롯됐다. 중앙 인민 위원회가 조직되어 73년부터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행정부와 당간부 30명 가량으로 구성된 기관이다. 모두가 당정치국원이나 각료급의 고위층이었다.
김일성은 스스로 이 위원회의 의장으로 들어섰다. 동시에 보안 기구, 당과 군부 및 모든 정부 기관에 대한 통제 기구가 행정부에서 분리되어 국가 주석이자 당총비서인 김일성의 직접 통제 아래 놓여졌다.
서울의 북한 전문가들은 김일성의 이러한 권력 기구 개편이 후계자 문제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일성은 62세이긴 하지만 병객이다. 그가 신장병과 고혈압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왔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김은 또 다른 중병에 시달려 왔는데 머리에 종양을 앓고 있다는 이야기다.
김의 실제인 김영주가 그의 후계자가 되리라는 것이 오랫동안 확실한 것으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사정이 바뀌어 1년 6개월 전부터 김의 전처소생인 아들 김정일이 부각되고 있다. 김일성이 자신의 아들에게 김 왕조를 넘겨줄 의도라는 것은 날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왕조류의 성격은 북괴 공산주의자들의 통치 방식에서 잘 드러난다. 당과 행정부의 책임 있는 자리를 김일성의 혈족이 13명이나 차지하고 있으며 당정치국에 만해도 4명이나 된다. 이런 사실을 두고 보면 독재자의 아들을 후계자로 결정한다는 것은 이상할 게 못된다.
이 목표는 지난해 명확히 드러났다. 선전 속에 새로운 게 강조되기 시작했다. 여러해 동안 김일성 이외에 『위대한 영도자』라는 말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김일성의 아들에 대한 찬미가 시작됐다. 김정일이 『나라의 지도자』로 언급됐다. 김정일은 이전에는 그의 부친만이 행사하던 사회·경제·문화 문제에 대한 처방을 스스로 내리기 시작했다. 김정일의 의견이 아직 김일성만이 판치고 있는 교과서 내용에 수록되고 있지는 않지만 지침으로서 출판되고 있다.
얼마 전부터 김일성의 두 번째 부인이 『혁명의 영웅』으로 더 이상 언급되지 않고 김정일의 생모인 첫 번째 부인이 대치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북한의 선전뿐 아니라 실질적인 권력 구조 운동에서도 이 사실은 드러나고 있다.
74년 한got동안 당과 국가 지도부에서도 뚜렷한 세대 교체가 있었다. 40대 세대, 즉 김정일의 세대가 강력하게 대두되었다. 그를 뒷받침할 것으로 보이는 당지도자들이 노동당 정치 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됐다. 또 다른 4명의 젊은 당료들이 정치 위원회의 후보 위원으로 임명됐다.
이는 김일성이 후계자 김정일과 노년층 사이에 있는 권력 구조 내부의 세대 격차를 구조적으로 해소하려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물론 미리 준비되고 있는 후계자 작업이 실현될 것인 지에는 의문이 따른다.
「스탈린」의 사후 소련의 사태라든가 유소기와 임표의 경험은 회의가 따르게 한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김일성이 이들 경험을 거울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적당한 시기를 택해 지도부의 변혁을 시도하며 동시에 저항 가능성을 배제할 「캠페인」을 벌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과 다른 공산국가들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다른 공산국가에서는 파벌 투쟁이 서방 관측통들에게 훌륭한 자료가 되는데 반해 북한은 예외가 되어 왔다.
북한의 지도층은 군사적인 체제면에서는 단결된 것처럼 보인다.
평양의 정치국에 「비둘기」파가 있을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권력의 구심점에 있는 인물들은 모두가 「매」파인 듯하다. 서울의 전문가들은 북괴 지도층의 젊은 세대들이 노년층보다 훨씬 공격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여러 가지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 젊은 층들이 김정일의 등장을 열심히 뒷받침 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북한에 김 왕조를 수립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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