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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 읽기] GDP 통계의 치명적 흠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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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4호 18면

언젠가부터 우리는 ‘국내총생산(GDP) 매니어’가 되고 말았다. ‘GDP 함정’에 매몰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제가 좋은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가장 적확한 잣대로 GDP 성장률을 활용하는가 하면, 정부 경제정책의 성패를 판단하는 가장 중심적 가늠자로 GDP 성장률을 들이대곤 한다. GDP 성장률이 높으면 성공한 정부, 낮으면 실패한 정부로 여겨왔다.

그런 잣대에서 본다면 김영삼 정부(연평균 7.4%)가 김대중 정부(5.0%)보다 낫고, 노무현 정부(4.3%)가 이명박 정부(2.9%)보다 나은 정부가 된다. 나아가 현 정부의 474정책이 성공한다손 치더라도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의 성과를 능가하기는 물론 이명박 정부의 성과를 추월하는 것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국가 경제정책의 성과나 국민의 살림살이를 평가하는 지표로 쓰기에 GDP 성장률은 너무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수없이 반복해 강조한 경제부흥과 국민행복을 국가정책의 양대 기조로 삼는 현 정부가 목표로 삼기에는 더더욱 적절치 않은 지표다.

첫째 흠결은 그것이 ‘국민’이 아니라 ‘국내’의 경제활동을 반영한다는 점이다. ‘국내행복’이 정책목표라면 몰라도 ‘국민행복’의 관점에서 본다면 GDP 수치와 국민 살림살이에는 심각한 괴리가 있을 수 있다. 개방도가 커지면 커질수록, 국내 증시에서 외국자본의 비중이 커질수록, GDP와 국민경제의 격차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로 커진다.

둘째 흠결은 GDP는 생산물량을 나타낼 뿐 가격 변화나 재고 변화를 감안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쌀 농가 생산량이 20% 증가해도 쌀값이 20% 하락하면 생산증가(경제성장)의 긍정적 효과는 전혀 없고, 원가 상승 요인만 떠안는 셈이다. 디플레가 전 세계적인 우려가 된 요즘 상황에선 이 결점이 더욱 크게 부각된다. 다른 경우로 쌀 생산이 20% 늘어도 판매량이 줄어 재고가 20%만큼 발생했다면 사실상 이 농가의 실제 형편은 나아진 것이 없어도 형식적으로는 20%의 경제성장을 한 셈이 된다.

GDP의 이런 결정적인 흠결은 GDP 성장률과 가계 실질소득 증가 사이의 심각한 괴리로 나타난다. 즉, GDP 성장률과 가계 실질소득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거나, 아니면 GDP 성장률보다 가계 실질소득 증가율이 현저히 낮은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실제로 2004~2013년 10년을 보면 거의 매년 가계 실질소득 증가율은 GDP 성장률보다 낮았다(그림 참조).

노무현 정부 5년 동안에는 GDP 성장률과 실질 가계소득 증가율의 격차가 연평균 2.3%포인트였고, 이명박 정부 시절엔 연평균 1.6%포인트였다. 이것은 GDP 성장률이 2%이더라도 가계의 실질소득 증가율은 거의 0%에 가깝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더 좋은 예는 2013년 경제성장률(2.8%)이다. 숫자로는 2012년(2.0%)보다 확실히 높다. 그러나 가계 실질소득 증가율은 2013년(1.8%)이 2012년(2.8%)보다 1%포인트나 낮다. 다시 말해 GDP 성장률이 높아져도 오히려 가계 실질소득은 떨어졌다. 바로 이 때문에 GDP 성장률보다는 가계 실질소득에 더 주안점을 둬야 한다.

이런 치명적인 맹점은 어디에서 비롯하는 걸까. GDP 성장률이 배당과 이자 같은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에 구분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절대 다수 국민의 소득원인 노동소득이 동결된다 하더라도 배당과 같은 자본소득이 커지면 GDP는 상승하게 되는 맹점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GDP와 함께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의 움직임을 동시에 살펴야만 균형감이 살아난다.

GDP에서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을 노동소득분배율이라 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79년엔 이것이 38.6%에서 47.7%로 수직 상승했고,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52.1%에서 62.6%까지 높아졌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발생한 97년 직후 몇 년간 하락했다가 노무현 정부에서 잠깐 58.0%에서 61.1%로 상승한 뒤 이명박 정부 때 다시 61.1%에서 59.7%로 하락해 왔다.

2014년 GDP 성장률은 지난해의 2.8%보다 높은 3.8%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획재정부(3.9%)와 한국은행(3.8%) 등 공공기관의 경제성장률 전망이 민간기관보다 더 낙관적이다. 그러나 GDP 성장률이 1%포인트 높아진다고 가계의 실질소득이 그만큼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맹점을 똑똑히 봐왔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정책의 핵심 관심은 성장률보다는 일자리 창출과 함께 임금·노동소득에 두어져야 하는 것이다. 특히 회사원·자영업자·중소기업의 소득에 정책적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국내 일자리와 소득 기회를 소멸시키는 기업의 해외이전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GDP 성장률 수치가 자동적으로 국민의 실질적 행복과 연결되던 시대는 오래전 끝났다. 60년대와 같은 경제성장을 21세기 경제부흥과 국민행복의 각도에서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면 가계노동소득이라는 ‘3D 안경’을 쓰지 않고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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