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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음 사기 사건…금융계 신용 타락 초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울지검 영등포지청에 적발된 은행도 어음 사기는 신용 화폐 역할을 하던 수표·어음의 한계성을 드러낸 것일 뿐만 아니라 은행이나 금융계의 신용 타락을 가져오게 한 사건으로 지적되고 있다.
범인들은 4개 파로 자금책·당좌 개설책·어음 판매책 등으로 세분되어 구속된 7명을 포함, 모두 약 30여명에 달하는 규모다.
이들은 68년부터 지난 3월까지 전국 23개 은행 등을 전전하며 마구 은행도 약속어음을 남발했다.
이들이 사취한 금액은 현재까지 밝혀진 1억원 이외에도 수억원에 달할 것으로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범인들의 수법은 우선 자금책과 거래 개설책이 공모, 의정부·논산 등 지방 은행이나 농협에 가공인 명의로·당좌 거래를 개설한다.
이때 다른 사람의 명의로 유령 기업체를 만들거나 남의 점포를 세내 튼튼한 자산 소유자처럼 위장하는 것은 물론이다. 범인들은 은행과의 당좌 거래를 위해 미리 적금이나 1백만원 미만의 빈번한 자금 왕래를 시켜 현금 거래 등이 잦은 기업이나 사람들처럼 꾸민 다음 이를 믿는 은행으로부터 수표책이나 은행도 약속어음책을 받아내는 것이다.
어음책을 얻게 되면 이들의 범행은 80% 정도 달성되는 것이다.
이들은 이 어음책을 판매책을 통해 시중 영세 상인들이나 부실한 토건업자들에게 어음에 액수를 기입하지 않은 백지 어음을 한장에 서울 등 도시의 경우에는 5만여원, 지방인 때에는 2∼3만여원씩 받고 팔아 넘겼다. 이때 어음 발행인은 범인들이 당좌 거래를 개설하며 내세운 가공 인물.
백지 어음을 구입해간 부실업자·상인들은 자기가 필요한 만큼의 액수를 어음에 기입, 사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채무·채권 관계, 물건 대금 등으로 이러한 어음을 받은 선의의 피해자들은 어음을 받을 때 발행인의 신용·거래 관계를 은행에 문의하게 마련이나 은행측은 그동안 범인들이 사전공작으로 보통 예금 거래를 하거나 당좌 거래 개설을 하면서 소액 단기 지급 어음을 자주 발행하여 자기들끼리 결제시켜 신용을 가장해 왔기 때문에 『거래 있다』 『신용 상태 믿을만하다』는 등의 답변을 해 피해자는 은행만을 믿고 어음을 받게 마련인 것이다.
악덕 상인은 부도가 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기 자신이 액수를 기입한 어음을 막상 부도가 나면 『자기도 발행인들로부터 받은 어음』이라고 발뺌, 피해자들만 골탕을 먹게 되며 어음이 부도가 날 때쯤은 이미 범인들은 자신의 은행 거래 잔고액 등을 모두 찾아 잠적한 후.
특히 범인들은 어음 용지를 파는 외에도 직접 어음을 현금 교환 (속칭「와리깡」=미리 지급 날짜까지의 이자를 제한 후 어음을 담보로 돈을 꾸어주는 것)할 때 신용을 가장하기 위해 자기들끼리 수차례의 이서를 하기 때문에 가공 인물인 발행인의 추적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부실 어음은 형법상 처벌 규정이 없다는 점을 악용, 부도 수표 수수 수단으로 쓰여지기도 한다 (부도 수표는 부정 수표 단속법 위반으로 처벌 규정이 있다). 즉 부실 어음을 떼어주고 그 대신 부도 수표를 회수, 형벌을 면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범행이 가능한 것은 은행도 어음을 믿고 구입한 피해자들에게 은행 자체가 신의를 저버리는 데에서 생겨났다.
은행은 당초 어음 용지를 내줄 때 발행인의 「자산 실태 조사」를 철저히 하여야함에도 고객이라는 이유로 범인들이 약간의 보통 거래 등을 한 후에는 범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어음 용지를 1백여장씩이나 한꺼번에 내주고 이들의 신용을 문의해 오는 경우 막연히『신용 있다』는 등의 무책임한 답변으로 피해를 초래케 한 셈이다.
은행간의 정보 교환도 없어 예를 들어 논산에서 농협·국민은행·충청은행 등 세 곳이 지난해 7∼8월 사이 범인들이 발행한 은행도 어음이 1억여원 이상 부도가 났는데도 이를 감추기만 해 더욱 피해자가 늘어나게 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어음부도는 형사 처벌 규정이 없어 이에 대한 보완이 시급하다는 것이 담당 검사 (이준승 부장·김태정 검사)들의 말이다. <김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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