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뇌에도 근육이 있다 … 집중하라 또 집중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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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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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골먼 지음
박세연 옮김, 리더스북
412쪽, 1만8000원

친구와 카페에 마주앉았다. 이야기가 무르익을 즈음, 탁자에 놓인 친구의 스마트폰에서 ‘카톡’ 수신음이 울린다. 친구의 시선은 스마트폰으로 옮겨가고 나는 대화를 이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민망해진다. 고개 숙인 친구의 머리에 대고 주섬주섬 이야기를 계속해 보지만, 마음이 좋지 않다. 대화의 흥은 이미 깨져버렸다.

 2006년 영어 사전에 오른 신조어 중 ‘pizzled’란 게 있다. ‘puzzled(당황한)’와 ‘pissed(짜능난)’가 조합된 이 단어는 함께 있던 사람이 갑자기 블랙베리를 꺼내 들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할 때 상대방이 느끼는 무안함과 불쾌감을 뜻한다. 지금은 일상에서 흔히 만나는 풍경이 됐다.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 등 사람들을 실시간으로 연결해 주는 디지털 세상의 자극은 우리를 공부에, 일에, 대화에 오랜 시간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런 시대의 변화가 정말 중요한 곳에 쏟아야 할 사람들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고 있다는 우려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우리의 뇌는 휴대전화 메시지 알림음, 멋진 광고 등 외부의 자극에 즉각 반응한다. 집중력을 높이려면 의도적으로 중요한 일에 마음을 쏟는 훈련이 필요하다. 주의력은 근육과 비슷하게 훈련을 통해 강화할 수 있다. [그림 리더스북]

 저자 대니얼 골먼은 1995년 『EQ 감성지능』이란 책에서 “IQ보다 EQ가 더 중요하며, EQ는 학습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는 주장으로 주목받았다. 이번 책에서 그는 EQ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의와 집중’이라는 주제를 탐구한다. ‘동시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대상 및 일련의 생각 중 단 하나에 생생하고 분명한 형태로 마음을 빼앗기는 일’, 즉 집중력은 일상적인 감정의 굴곡 속에서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일에서의 성취를 높이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 하는 일에 집중할수록 잠재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렇다면 이미 ‘스마트폰의 노예’가 되어버린 현대인의 집중력은 어떻게 복원할 수 있을까. 저자는 뇌과학 연구결과를 풍부하게 이용한다. 지나가는 미인이나 휴대전화 메시지 등에 즉각 주의를 빼앗기는 것은 반사적인 반응이다.

 반면 책에 집중하거나 누군가와 솔직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는 데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히 주의는 근육과 매우 흡사해 훈련을 통해 강화할 수 있다. 즉, 주변의 사소한 자극에 반응하지 않고 의식적으로 중요한 일에 마음을 쏟는 노력을 계속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집중하는 힘이 길러진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명상훈련이다.

 집중력의 중요성과 훈련법을 제시하는 책은 적지 않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집중력의 범위를 사회적인 영역까지 확장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저자는 집중력 강화는 타인의 기분과 상황을 세심하게 들여다보게 만들며 공감하는 능력 역시 향상시킨다고 말한다. 집단을 이끄는 리더들은 더 나아가 큰 그림, 사회의 시스템을 볼 수 있는 집중력을 길러야 한다. 시스템에 대한 집중은 “경제발전과 기술의 진보, 문화의 흐름을 읽어내고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1997년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다양한 제품에 흩어져 있던 회사의 자원을 하나의 데스크톱과 하나의 노트북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놀라운 성공을 거둔다. 첨단기술에 대한 이해와 소비자의 문화적 욕구를 읽는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집중력을 개인적 영역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수단’의 하나로 제시한 것은 의미있지만, 뇌 구조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미래를 읽는 리더십까지 연결되는 과정은 다소 억지스럽다. 인간의 뇌는 대기오염이나 방사성 폐기물 문제처럼 미래에 모두의 생명을 위협할지 모를 중대한 사안보다 내 옆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따라서 저자도 인정하듯이 우리의 주의를 공동체 문제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두뇌에 인공적인 보조장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이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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