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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학전의 어린이교육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세살 버릇 여든까지」라는 속담은 우리 귀에 익은 말이지만 요즈음 세계 각국 학자들이 조기교육의 중요성을 제창하는 것을 볼때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일찍 눈이 떴고 지혜 있는 속담을 통해 대중을 감화시켜왔는가를 알 수 있다.
「손자를 귀엽다 귀엽다하면 할아버지 상투 위에 올라앉는다」는 말도 있다. 역시 귀여운 가운데도 훈육의 필요성이 있음을 암시해 주는 말이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이 유아교육에 대한 슬기를 보여주었건만 현재 우리 주변의 유아들을 보면 어쩐지 망각지대에서 살고있는 느낌이 든다.
뺑소니차에 치여 쓰레기통에 버려져도 그만이요, 학교에서 돌아오다 뚜껑 없는 하수도에 빠져 죽기도 일쑤요, 놀이터가 없어서 쓰레기 더미나 골목길에서 세월을 보내고 자동차가 질주하는 길에서 공치기를 하고 세발 자전거를 타야하는 환경 속에 시달리는 것이 우리 어린이들인 것 같다.
옛날 현인이 이 시대에 살았다면 어떠한 격언을 우리에게 남겼을까 궁금하다. 혹시 「어린이는 놀이터로 어른은 일터로」라고 하지나 않을까 싶다. 어린이에게는 놀이가 곧 생활이요, 학습이다. 놀이는 어린이를 즐겁게 하고 자라게 하고 배우게 한다.
실컷 놀아보지 못한 어린이의 신체와 정신이 무럭무럭 자라는 법도 없고 큰 인물이 될 수도 없을 것이다. 어려서 못 놀아 본 사람은 커서 놀게 마련이다.
어린이의 놀이를 보다 효과 있게 하기 위해서는 미리 의도적으로 구상된 환경·시설·교사가 있으면 더욱 좋다. 또 혼자 노는 것이 아니라 같은 또래 어린이가 있으면 사회성 교육도 아울러 할 수 있으니 더욱 이상적이다. 우리 주변에서 그러한 곳이 있다면 유치원과 어린이집, 그리고 요사이 새로 머리를 들기 시작한 유아원·새마을 협동유아원 등이라 하겠다.
필자가 몇해전 전국에서 표집된 6천5백명 어린이의 사례를 중심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국민학교 입학 전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다닌 아이들은 가정이나 고아원에서 직접 진학한 아이들보다 1학년 평균 성적이 훨씬 높음이 밝혀졌다. 동시에 정서적 안정감·사회적 적응력도 일반적으로 우세함이 드러났다. 이 결과로 미루어보면 가능한 한 더 많은 어린이들이 학교 가기 전에 어떤 교육기관을 거쳐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같은 일은 개인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데서 그칠 일이 아니라 국가가 좀더 적극적으로 모든 어린이에게 문호를 개방하는 일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의무교육의 연한을 1년 인하하여 모든 어린이가 무료로 유치원에 다니는 혜택을 입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근로여성의 자녀를 위해서는 「어린이 집」을 더욱 증설하여 모든 필요한 가정에 혜택의 기회가 돌아가게끔 하되 보모의 질적 향상·양적 증대는 선결조건이 되어야한다.
가족계획이 보급됨에 따라 국민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이가 해마다 줄고 교육대학출신들이 놀아야 하는 판에 교대 안에 보모교육과를 병설해서 취학 전 아동교육의 수요에 대비하는 것도 선견지명이 있는 문교정책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개발은 성인을 상대로 할 일이 아니라 학습속도가 가장 빠른 시기에 있는 취학아동에게까지 미쳐야 한다고 본다. 【주정일·<숙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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