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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전쟁] "軍수뇌 도주…상관 사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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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마지막 한방의 총알이 남을 때까지 병사들은 방아쇠를 당길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그렇게 장담했다. 군의 충성심을 철석같이 믿은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후세인 대통령의 기대를 철저히 저버렸다.

방아쇠에 손가락 한번 안 대고 미군에 항복하는 이라크 군인들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이라크 군조직의 붕괴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휘체계 붕괴 초읽기=미 폭스TV는 지난 21일 국방부 고위 소식통을 인용, "이라크군 수뇌부가 국경을 넘어 시리아로 달아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군의 내부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연합군과 직접 전투를 벌여야 하는 일선 부대의 분위기는 더 심각하다. 미.영 연합군이 이라크 남부 도시 바스라를 포위한 가운데 이 지역을 방어하던 이라크군 51사단의 사단장 이하 8천명 병력이 투항했다고 미 국방부가 확인했다. 미군의 설득작업이 계속된 뒤 사단장과 참모들의 결심으로 투항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라크군 제11사단 병력 수천명도 미군에게 항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제3보병사단 제1연대의 앤드루 발레스 대위는 "유프라테스강 인근에서 마주친 이라크 병사들이 항복했다"고 말했다.

일부 병사들은 총을 버리고 민간인 복장으로 투항하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더 타임스는 "이라크 병사들이 21일 이라크 남부의 전략 요충인 포 반도의 석유터미널을 둘러싼 공방전에서 연합군과의 전투를 피하려고 자기 부대 상관들을 사살했다"고 22일 보도했다.

신문은 영국 해병대가 AK-47소총 탄피가 널려있고 이라크군 장교들의 시체로 가득 찬 벙커를 발견했다고 전했다. 자칫하면 37만 병력의 이라크군은 위.아래가 동시에 흔들리면서 한꺼번에 무너지는 상황도 가능한 분위기다.

◆공화국 수비대도 동요=후세인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하는 8만명의 공화국수비대는 목숨을 걸고 바그다드를 수호해 연합군의 피해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군사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하지만 미 CNN은 쿠르드족 지도자와 이라크 해외 반체제 인사들이 최근 24시간 내지 36시간 내에 이라크 공화국수비대 고위 인사들을 만나 협상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무장해제를 위해 평화적으로 이라크에 진입할 수 있도록 강화협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협상에는 미 중앙정보국(CIA)과 국방부가 긴밀히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상의 성공은 사실상 반(反) 후세인 쿠데타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도 "이라크군을 상대로 공개 및 비공개적인 채널을 통해 항복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확인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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