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더 많은 포퓰리즘이 필요하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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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새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결산 백서를 내면서 "더 많은 포퓰리즘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인수위가 이미 해체돼 새 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인수위의 문건을 갖고 시비를 벌이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인수위 백서'란 인수위 활동의 결과를 집약시킨 것으로 새 정부에 일종의 조언을 하는 문건이라는 성격으로 볼 때, 또 많은 인수위원들이 새 정부의 주요 요직들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로 볼 때 이러한 인수위 백서의 인식이 잘못됐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인수위가 활동하던 때나, 노무현 대통령의 취임 초 행보에서 나타났던 돌출 요소들이 단순히 스타일의 차이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인식을 전제로 한 새 정부의 방향이 아니냐는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민주주의를 하면서 대중의, 혹은 일반 국민의 인기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흠될 일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여론의 정치이며, 정권도 결국은 표를 많이 얻은 쪽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를 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포퓰리즘적 요인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인기를 얻기 위해 제도와 법률을 무시하는 데 포퓰리즘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두개의 축으로 움직여 나간다. 하나는 국민의 지지요, 다른 하나는 법치다.

인수위 보고서가 밝힌 대로 포퓰리즘은 '1890년 미국의 인민당이 농민과 노동자의 표를 얻기 위해 경제적 합리성을 무시한 정책을 표방'한 데서 비롯돼 제도와 원칙을 무시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정책을 의미한다.

1930년대 프랑스에 버금가는 선진국이었던 아르헨티나가 끊임없이 경제위기에 시달리게 된 원인이 바로 이러한 포퓰리즘의 정치 때문이었다.

새 정부 들어 인터넷을 통한 장관 추천, 장관 인사시의 인터넷을 통한 해당자의 공격, 노사 협상에서 근로자 쪽을 대변하는 정부 개입 등은 법을 위반했다고까지는 할 수 없으나 어느 정도 포퓰리즘적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인수위의 이러한 결론이 혹시 법이나 제도를 따르기보다는 국민의 인기에 의존해 앞으로 정치를 해 나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럴 경우 경제적 합리성을 무시한 선심정책이 펼쳐지고, 법과 제도가 '국민의 이름'으로 파괴되면 결국 피해자는 국민 모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특히 포퓰리즘의 종말은 통제할 수 없는 권력을 낳게 되며 그로 인해 인기주의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법치 없는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선거로 뽑은 대통령이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헌법의 틀 속에서 권한이 부여된 것이다. 정부는 백서가 작성된 경위와 포퓰리즘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 불필요한 오해를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