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걱정속에 맞는 '소득 1만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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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지난해 1만달러를 넘어섰다(1만13달러). 환율 덕도 있지만, 그래도 외환위기의 악몽을 딛고 5년 만에 다시 1만달러 시대에 재진입했다는 점에서 감회가 있다.

하지만 이런 낭보에 실감을 느끼는 국민은 많지 않다. 체감 경기는 어느 때보다 어렵고, 국내외 여건은 어두운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환율은 뛰고 경기는 침체된 최근 분위기를 감안할 때 이번 1만달러 역시 다시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1만달러는 고사하고 몇년 전의 악몽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우리가 명실상부한 1만달러 시대를 정착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2만달러, 3만달러의 시대로 나아가려면 더욱 비상한 각오와 다짐이 필요하다.

남미의 아르헨티나 등이 한때 빠른 경제성장을 보이다가 국가 운영에 실패해 결국은 제3세계 국가로 전락한 경험을 거울삼아야 한다. 남미 국가들의 이러한 실패 배경에는 무엇보다 정부가 포퓰리즘에 근거한 친사회주의적 정책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경제구조를 생산의 효율성 위주에서 지나친 분배 위주로 바꾼 데 있다. 물론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어느 정도의 분배 공정화가 필요했지만 인기를 얻기 위해 생산성 자체를 침식시키며 나눠먹기 정책에 골몰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도 1만달러 시대를 어떻게 잘 관리해 나갈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만일 우리가 남미식 분배 위주의 정책에 매달린다면 그 결과는 자명해진다.

특히 이 과정에서 노동 부문과 정치 부문이 결합할 경우 전형적인 대중주의 경제로 빠질 위험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새 정부의 경제 방향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당면 과제는 무엇보다 정부의 인식이 경제살리기 우선으로 바뀌어야 한다. 최근 조금 달라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새 정부 일각에는 위기의 실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

만의 하나 1만달러를 보고 다시 막연한 낙관론이나 착시(錯視)현상에 빠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업 역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경영 구조와 투명성을 확보해야 하며, 교육.노사.복지 등 각종 제도와 국민.근로자의 의식도 선진권 진입에 걸맞은 성숙한 면모를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앞으로 5년 후, 10년 후에는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살 것인지에 대한 연구에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된다.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던 소득 1만달러가 가능했던 것은 우리가 그만큼 노력한 결과다. 이를 유지하고, 더욱 높은 단계로 발돋움하는 것 역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