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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형 절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몇해 전인가 일본에서 젊은이들이 바라는 직업 「베스트」 5에 관한 여론 조사를 한 적이 있다.
그 결과는 「저널리스트」·작가·「프로」 야구 선수·배우의 순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돈이다. 배금의 현대적 풍조는 직업관까지도 이렇게 바꿔놓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가장 바람직한 직업의 수위에는 「카·레이서」, 즉 생사를 걸고 출전하는 경기용 자동차 운전사였다. 납득이 갈만도 하다. 「카·레이서」에게는 엄청난 상금의 유혹이 있다. 그뿐이 아니라 「드릴」이 따르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젊은이의 꿈의 최대 공약수는 돈과 「드릴」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강도처럼 돈과 「드릴」을 한꺼번에 상징하는 것도 드물 것이다.
7년 전에 일본에서 4억「엥」을 훔친 강도가 있었다. 경찰 당국에서도 전혀 그의 꼬리를 잡지 못했다. 이제 몇해 안가면 그는 시효에 걸려 잘만 (?)하면 네 활개를 펴고 대로를 걸어다닐 수 있는 4억「엥」부호가 되는 것이다.
그러자 이 강도가 끝내 잡히지 않도록 성원하는 투서를 젊은이들이 수없이 신문사에 보내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런 것이 오늘의 풍조일까. 그리고 이것은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일까.
미국에서도 상점에서 물건을 훔치는 치기배에 의한 피해액이 매일 8백만 「달러」가 넘는다. FBI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에 이런 범죄가 1백74%나 늘어났다고 한다.
더우기 놀라운 것은 이런 범죄자들에겐 죄의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 중의 대부분은 꼭 물건이 아쉬워서 훔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병적인 충동이 아니면 「드릴」의 재미를 맛보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이렇게 옛 도둑과 오늘의 도둑과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요즘은 꼭 먹고살기 위해서 저지르는 범죄자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향락의 수단으로 도둑질을 하는 범죄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 나라에서도 지난 3년 동안에 억원의 치부를 하고서도 계속 절도 행각을 하다 잡힌 조세형의 경우가 그렇다.
망원경·전기 절단기 등 각종 장비를 갖춘 그에게 있어서는 절도란 어엿한 기업이나 다름없었다. 따라서 그에게 죄의식이 있을 턱이 없다.
그는 도둑이기는 하지만 양상의 군자는 아닌 것이다. 우선 그는 가난 때문에 도둑이 된 것이 아니다. 마치 절도 행위를 다른 정상적인 영업 행위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반드시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범죄는 모든게 「기업화」되어 가며 있는 것이다. 양옥에서 살고 있던 그는 사나운 「셰퍼드」를 기르고 있었다. 도둑이 제일 무서워한 것이 법도 아니요, 양심도 아닌 바로 도둑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비단이 도둑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웃을 수도 없는 「아이러니」의 한가닥을 우리는 여기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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