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최태원 회장 형제 모두 실형 … 충격에 빠진 SK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2008년 5월. 최태원(54) SK그룹 회장은 대법원에서 1조5000억원대의 분식회계 혐의(배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확정받았다. 거액의 배임 혐의가 인정됐지만 개인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는 점을 감안한 판결이었다. 6년 뒤인 2014년 2월 27일, 대법원 1부(주심 양창수 대법관)는 횡령 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태원 회장에게 징역 4년, 동생 최재원(51) 수석부회장에게 징역 3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 회장 형제는 SK그룹 계열사의 펀드 출자금 465억원을 빼돌려 옵션 투자용으로 김원홍(53) 전 SK해운 고문에게 보낸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대법원은 이 중 450억원가량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재계 서열 3위인 SK그룹의 회장 형제가 그룹 계열사의 자금을 사적인 이익을 위하여 유용한 행위 등에 대하여 엄정한 책임을 물었다”고 밝혔다.

 최 회장 측은 상고심에서 “주범인 김원홍 전 고문에 대한 증인신문을 항소심에서 하지 않아 심리가 미진했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제기했다. 김 전 고문은 이 사건 수사가 시작된 2011년 초 해외로 도피해 대만에 머무르다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7월 말 체포됐다. 이후 선고공판을 하루 앞둔 지난해 9월 26일 국내에 송환됐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김 전 고문이 제출한 통화 녹취록에 진술이 나와 있고 해당 증언 없이 최 회장이 인정한 사실만 갖고 유죄로 볼 수 있다”며 선고를 강행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김 전 고문을 신문하는 것이 바람직했지만 하지 않았다고 해서 재량권의 한계를 벗어난 위법행위로 평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 회장 측은 또 “펀드출자를 지시한 건 맞지만 출자자금을 빼돌린 것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비상식적으로 무리하게 펀드를 만든 객관적 정황들에 비춰 보면 최 회장 등이 횡령 목적으로 김 전 고문과 공모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봤다. 최 회장 형제와 김 전 고문 사이의 통화 녹취록을 유죄의 증거로 본 원심 판단도 정당하다고 밝혔다.

 법조계에선 최 회장 사건의 경우 개인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이 실형 판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최기영 법무법인 세한 변호사는 “최근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사건은 범행동기가 회사의 재무적·신용적 위험에 대처하기 위한 것인 반면 최 회장 사건은 회사자금을 빼돌려 개인적 투자를 하려 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 총수 사건에서 선처를 받기 위한 단골 메뉴였던 ‘피해 변제’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최 회장 형제는 횡령사건 발생 후 저축은행으로부터 대출받아 횡령액을 모두 갚았으나 실형 선고를 피하지 못했다.

 재판 전략 면에서 실패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 회장은 검찰 수사 단계와 1심에서는 “펀드 조성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에서 최 회장은 징역 4년 선고와 함께 법정구속되고 최 부회장은 무죄를 선고받자 항소심에서 변호인과 전략을 모두 바꿨다. 항소심 첫 공판에서 “펀드 조성 사실은 알았지만 돈 인출 사실은 몰랐다”고 말을 바꿨다. 이날 확정판결로 지난해 1월 말 법정구속됐던 최 회장은 2017년 1월 말, 검찰 수사 도중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던 최 부회장은 2016년 10월 출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민제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