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3·1정신과 제2의 3·1운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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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지난 ‘중앙시평’에 대해 여러 독자가 질문을 주셨다. 5년이나 앞서 3·1운동 100주년을 언급한 이유, 100주년에 워싱턴에 잔인성 박물관을 건립하기 위한 시민참여 방식, 일본문제 극복을 위한 우리 안의 해법과 조치 등.

 먼저 5년 앞선 언급은 100주년을 향한 우리 사회의 정신적 각성의 필요성, 즉 오늘의 내외 현실과 3·1정신의 정합 때문이었다. 3·1정신은 오늘의 한국과 한반도와 동아시아 문제 해결의 한 결정적 실마리가 될 수 있다. 근대국가 수립을 향한 공화혁명의 시도로서 3·1운동의 골간정신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보편주의였다. 그리고 민족주의가 아닌 보편주의야말로 오늘의 한국과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필수적인 가치다. 3·1운동은 자유·인간존엄·연대·민주공화국·주권과 평등·세계주의를 한 품에 안은 동아시아 역사의 일대 분수령이었다.

 첫째 3·1정신은 일체의 억압과 전제, 폭력과 침략을 배제한 자유·민권·평등의 민주공화 원리였다. 거기에는 외부와 내부의 모든 전제가 포함된다. 근대 100년 한국의 정신구조와 사회체제의 제일 원리로 정착되는 민주공화국·민주공화주의는 3·1운동을 계기로 등장한 이후 모든 헌법 초안과 체제 구상의 고갱이요 기저원리였다. 오늘의 남한과 북한은 3·1정신의 골간인 민주공화국 원리를 얼마나 실현하고 있나? 또 동아시아 국가들은 어떠한가?

 둘째, 연합이다. 3·1운동은 모든 계층과 노선과 세력들이 참여하는 통합과 통일을 표상하였다. 민중적·민주적 참여에 바탕한 연대와 통일의 3·1운동 집합체험은 분열과 대립, 적대와 분단을 지속하는 오늘의 한국과 한반도에 중대한 공통의 자양분을 제공해준다. 즉 안중근과 함께, 남북이 함께 기리는 유이한 근대적 역사자원인 3·1정신의 복원은 남북통일의 공통준거로 승화될 수 있다. 남북은 5년간 어떻게 함께 준비할 것인가?

 셋째, 동아시아와 세계 차원의 3·1정신은 세계주의, 특히 주권독립·공존과 평화였다. 비폭력 평화주의와 세계(주권)평등은 그 정수였다. 오늘날 동아시아 화해·공존·평화를 위협하는 중대요소의 하나는 일본의 침략 및 전쟁범죄 부인과 그로 인한 인권·영토갈등·과거사 문제의 악화다. 즉 일본문제다.

 그러나 일본문제를 한국과 일본, 또는 일본과 과거 식민국가들 사이의 민족문제로 접근해서는 해법을 찾을 수가 없다. 제국주의 전쟁범죄는 ‘인간성에 반하는 범죄’이자 ‘평화에 반하는 범죄’로서 전 인류적 보편문제다. 따라서 일본(범죄)문제는, 유럽연대와 세계연대를 통해 해결해 간 독일(범죄)문제의 해법을 따를 필요가 있다.

 일본문제를 넘는 국제연대는 경제·무역·문화·예술 부문 교류협력의 급증과 정치·군사·역사·영토 문제의 악화가 공존하는 ‘동아시아 패러독스’를 넘기 위한 지름길이다. 실제로 독일문제로 인한 ‘유럽패러독스’는 동아시아패러독스보다 훨씬 심각했다. 근대 이후 민주주의, 의회주의, 주권국가(공존) 체제, 산업혁명을 주도한 유럽은 동시에 제국주의 침략, 제1·2차 세계대전, 파시즘과 나치독재, 인종주의,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사 최악의 집단범죄를 자행했다. 이 유럽패러독스의 최종 주도자는 독일이었고, 그 해법은 독일문제 극복을 위한 유럽연대와 국제연대 외엔 없었다.

 동아시아패러독스의 해법은 일본문제 극복으로부터 비롯된다. 물론 중국의 부상은 변명일 뿐이다. 그것은 일본문제 극복 이후의 문제다. 유럽을 보자. 소련? 반공·반소 때문에 나치 극복을 유예하였다가, 냉전대치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독일문제를 처리하여 오히려 독·소 관계개선, 동서공존, 냉전해체, 유럽통합, 독일통일의 돌파구를 마련한 유럽과 세계의 지혜를 꼭 배워야 한다. 반공·반북 때문에 친일(청산)문제를 덮었던 냉전 초기 유럽과 동아시아와 한국의 우를 재연해선 안 된다.

 그 한 출발은 우리 내부에 있다. 세계연대를 이끌어낸 독일의 민주화와 프랑스·폴란드·이스라엘…의 내부반성과 청산을 유념하자. 우리 내부의 제국주의 협조 및 전쟁범죄 협력논리와 세력의 엄정한 자기반성과 극복이야말로 보편적 일본문제 극복과 국제연대의 출발점이다. 즉 내부의 과거극복과 민주주의가 먼저라는 점이다. 정치와 언론과 교육에서 내부의 일본제국주의 및 전쟁범죄 협조 세력과 논리를 (자기기관, 자기부모 및 자기이념의 정당화를 위해) 긍정하고 지지하고 교육하면서 보편적 일본문제 극복과 국제연대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편한국을 만들지 않고는 세계의 보편논리를 선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3·1운동 100주년에는 서울과 평양, 도쿄와 베이징, 베를린과 워싱턴이 같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깊이 궁구하고 또 궁구하자.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