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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곁엔 '초콜릿왕' … 야누코비치 뒤엔 '가스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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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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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갈등의 절정이었던 올 1월 중순 의미심장한 사건이 일어났다. 최근 대통령 자리에서 축출된 빅토르 야누코비치(64)의 비서실장인 세르히 리오포치킨이 돌연 사표를 던졌다. 야누코비치가 시위를 강제 진압하는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당시 로이터통신은 우크라이나 정치·경제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야누코비치 지지세력이 균열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리오포치킨은 우크라이나 가스재벌 드미트로 피르타시(49)의 후원을 받는 인물이다. 그의 사임은 곧 피르타시가 야누코비치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음을 뜻했다. 피르타시는 야누코비치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더 나아가 피르타시 이탈은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신흥 부호)의 균열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최근 미국 CNBC 등에 따르면 “시민혁명이 올리가르히의 선택을 압박하고 있다”며 “(피르타시 같은) 신흥 부호 일부가 야누코비치와 러시아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 배후 실세들이 돌아서고 있다는 얘기다. 올리가르히의 힘은 러시아보다 우크라이나에서 더 세다. 미국 랜드연구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 50명이 국내총생산(GDP)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45% 정도로 평가됐다.

 그런데 이런 올리가르히들이 이제는 서로 갈라섰다. 반(反)야누코비치 세력의 대표적인 부호는 페트로 포로센코(49)다. 그는 초콜릿을 팔아 16억 달러(약 1조7000억원)에 이르는 부를 축적했다. 야누코비치 밑에서 외무장관 등을 맡았다. CNBC는 “포로센코가 반정부 진영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인물”이라며 “평화적으로 권력이 이양되면 차기 정부에서 요직을 맡을 사람”이라고 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반야누코비치 올리가르히는 포로센코 말고도 금융·에너지 재벌인 헤나디 보호리우포프(52)와 미디어·금속 재벌인 빅토르 핀추크(54) 등이 있다.

 반면에 야누코비치파 올리가르히엔 ‘ 철강왕’으로 불리는 바딤 노빈스키(51)가 버티고 있다. CNBC는 “노빈스키가 야누코비치와 러시아를 이어주고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노빈스키의 재산은 19억 달러 정도다. 야누코비치가 권좌에 있을 때 파산한 조선소를 인수했다. 그 밖에 ‘우크라이나 가스왕’인 세르게이 쿠첸코(28)도 야누코비치 쪽이다.

 안개 정국 속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 올리가르히도 상당수다. 대표적인 인물이 우크라이나 최고 갑부 리나트 아크메토프(48)다. 그의 재산 규모는 150억 달러 정도다. 철광과 석탄이 부의 원천이었다. 최근 야누코비치와 거리 두기를 한 가스재벌 피르타시도 중도파로 분류된다. 영국 더타임스는 “부를 일군 지 20년 정도밖에 안 된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들에게 지금이 최대 고비”라며 “권력의 향방에 따라 우크라이나 재계의 판도도 혁명적으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남규 기자

◆올리가르히=러시아 등 동유럽이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신흥 부호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 이후 국가 소유 생산시설을 일반 시민들에게 주식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민영화했다. 이때 자금력을 갖춘 인물들이 시민들한테서 주식을 사모아 올리가르히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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