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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공기가 투명하지가 않다. 물기를 머금은 듯이, 꿈을 머금은 듯이 투명하지가 않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연분홍색으로 보인다.
겨울은 지났는가? 아직 바람은 쌀쌀하다. 통근 길의 사람들은 아직 겨울의 의상을 버리지 않고 있다. 미련 때문만 일까?
정말로 겨울은 지나갔는가? 봄은 꼭 예술가의 손과도 같다. 어디서부터인지 모르게 살짝, 조심스럽게 봄은 손을 뻗친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조심스럽게 바꿔 놓는다. 마치 창조하는 예술가의 손처럼 봄은 묵은 것, 새것을 뒤바꿔 놓고 여기 저기 꽃을 심어 놓는다. 아무 것도 파괴하지 않으면서-. 「E·E·커밍스」는 봄을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다. 봄에는 모든 것이 탈을 바꿔간다.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그리고 모든 것이 즐거워진다.
마치 얼굴을 붉힌 소녀처럼 대지는 그 봄의 정기로 터질 듯 한 가슴에서 꽃이며 풀을 꺼내 보인다. 조금도 아낌없이. 이제 모든 것이 시작된다.
봄인 것이다. 3월인 것이다. 마냥 즐거운 것이다. 자연의 「러브·레터」에 모든 사람들이 마냥 가슴을 부풀리게 되는 것이다.
하기야-.
『수탉이 울고
시냇물이 흐르고
참새들이 지저귀고
호수가 빛나고….』
이렇게 노래한 「워즈워드」의 자연을 우리는 모른다. 그래도 먼 산에서 기쁨이 들리고 샘에서 생명이 솟아오르는 마치 그런 소리가 우리의 귀에도 들리는 것도 같다.
착각일까? 봄이나를 반긴다고 여기는 게 착각일까? 어딘가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고 여기는 것도 착각일까?
봄은 장난꾸러기다. 변덕스러운 예술가의 손처럼 언제 또 눈보라를 날리게 할지 모른다. 그리하여 고개를 살짝 내밀려던 나뭇가지의 싹을 움츠리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3월은 봄이다. 그리고 꿈과 꽃의 계절이다. 아무리 북풍이 아직은 피부에 차갑다 해도 꺾일 꿈도 아니다. 아무리 눈보라가 모질다 해도 봉오리 지는 꽃의 정기를 꺾지는 못한다.
겨울은 이제. 가버린 것이다. 그리고 겨울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움츠렸던 어깨를 활짝 펴고, 고개를 쳐들며 봄의 대기를 들이 쉴 때 겨울의 잔해는 이미 없다.
아직은 꽃이 없다. 새 소리도 들리지 앓는다. 누구하나 흥겹게 노래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봄은 왔다. 3월인 것이다. 비록 아직은 봄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누구나 봄을 느낄 수는 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봄의 꿈을 잃지 않는 동안은 봄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는 않을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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