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석방」이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국, 원점으로 후퇴할 수도>
『현행 헌법을 부정하는 사태를 당분간은 주시하겠으나 끝내 자숙하지 않고 지나친 탈선행위를 할 때에는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발동,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거국적 정치체제 발언 후 꼭 1주일만에 나타난 박정희 대통령의 강경 대응발언으로 정계는 긴장에 휩싸여 들었다.
20일 법무부 순시에서의 이 발언에 이어 21일 문공부에서는 더욱 격앙된 어조로『아무리 해도 말을 안 들으면 법으로 다스릴 수밖에 없다』고 강경 발언 제2탄을 던졌다.
연타되는 강경 발언은『죄가 없다』는 일부 석방자의 주장과 이에 동조하는 정치인·종교인들의 지지발언 및 이 같은 움직임을 크게 보도한 언론의 보도자세를 겨냥한 것은 발언문맥에서도 드러나 있다.
지난 17일 차지철 청와대 경호실장 주최 만찬회에서 여당 간부들과 저녁을 함께 했을 때만 해도 박 대통령은 석방인사들의 과격한 언동에 대해『교도소에 있던 사람들이 좋은 얘기만 할 리가 있겠느냐?』고 대범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계속해서「날조」「조작」「고문」등 원색적 용어가 튀어나오고『일부 신문이 이들을 개선장군처럼 다루어 사진도 대대적으로 싣는』사태가 빚어졌다.
이런 사태발전이 대통령의 강경 자세를 유도했으리라는 풀이이며 그래서 어느 고위관리는 『계속 격렬한 언동을 할 경우 정국을 원점에서 더욱 후퇴시키는 사태를 초래하지 않겠느냐』고 진단했다.
『이런 사태가 계속된다면「거국!」의「거」자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가을이 올 것 같다』는 등의 발언은 바로 항거와 강 경의 반복이 몰고 올 정국한파를 우려하는 말들이다.
특히 언론이 주된 비판 대상이 되어 있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수습책과 관련해 주목되는 대목의 하나다.
『석방된 사람이 모두 과격한 언동을 하는 것이 아니며 일부 보도된 것이 그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한 것이 아니다. 일부 언론에 의해 선동된 것 같다』는 것이 정부 쪽에서 언론을 보는「눈」이다.

<정부는 대책수립에 부심>
경화된 분위기 속에서 정부는 대응책 수립에 부심.
17일에 이어 18일 상오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린 정부-여당 대책회의는 1단계로 황산덕 법무장관이『재 수감』용의의 특별담화를 내고 유기춘 문교장관이『복학·복직 불가능』을 밝힌 기자회견으로 대응.
18일의 대책회의는 정례 국무회의까지 취소해 가며 하오에 다시 속개됐고 김종필 국무총리는 이어 청와대로 박정희 대통령을 방문, 협의를 가졌다.
경화된 분위기를 반영하여 정부 쪽에서는 석방자들이 근신하지 않는다는 비난과 함께 『고문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석방자를 언론이 영웅시한다』는 등「옥타브」높은 해명과 주장이 쏟아져 나왔다.
18일 하루동안만도 황 법무·유 문교장관 이외에 이병희 무임소장관과 길전식 공화당 사무총장이 해명에 나섰고, 19일에는 공화당의 박준규 정책위 의장·김용태 총무가 동시 다발로 규탄 발언.
이런 움직임과 관련해 정부 고위층에서는『당이나 일부 행정기관에서 내 뜻을 올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문제를 만들어 낸다』고 국민투표 기간과 그 이후의 일련의 사태에 불만을 드러냈다는 얘기가 나돌았고 정부-여당 간부들의 규탄발언은 이에 뒤따른 후속타가 아니냐는 추측을 자아내게 했다.

<「강경」만 예상하면 오산>
유정회 정책위가 석방자의 재 구속 결의를 하게 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으리라는 관측.
19일 열린 정례 정책위는 의제 없이 얘기를 하다가 시국문제로 화제가 옮겨져 강경 쪽으로 급선회를 했다는 깃.
어느 의원은 석방인사 중 백기완씨가『소 감방에서 대 감방으로 이감됐을 뿐』이라고 말한 출감소감을 비판, 『국가의 도의적 바탕을 뒤흔드는 중요한 발언』이라며『술 취한 주정꾼이 설혹 무고동 네거리에서 떠들었다 해도 보안사범으로 다뤄야 할 발언이 아니냐』고 들고나섰다.
참석한 전원이 이구동성으로 동조했고 평소 온건 론을 펴 왔던 이숙종 의원 같은 이도 『석방자들이 너무하다』고 했으며 한태연 의원은 사회를 맡았던 구태회 정책위 부의장이 무슨 발언을 하려 하자『원래 사회자는 말할 자격이 없으니 듣기나 하라』면서 말을 가로막고 강경 론을 전개.
결국 단 한사람의 이의도 없이 재 구속 건의라는 초 강경 결의를 했다.
박 대통령의 헌법에 의한 강권발동 발언에 대한 여당권의 반응은 대체적으로『충분히 가능하다』는 쪽이다.
공화당의 한 간부는『모기를 잡기 위해 도끼를 쓰는 일이야 없을 것』이라고 전제를 하면서도『국가보위를 위한 대통령의 권한에는 국정전반에 걸쳐 발동할 수 있는 긴급조치권은 물론 현재의 비상사태 아래서는「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 법」에 의해서도 다양한 비 상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했다. 이영근 유정회 부 총무는『강경 조치가 마치 항생제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 만약 어떤 조치가 또 나온다면 가장 단위가 높은 것이 아니겠느냐』고 예견.
그러나 공화당의 이해원 대변인은『국가를 경영하는 대통령으로서는 헌법에 보장된 다각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 『어떤 강경 조치만을 예상한다면 오산일 것』이라고 약간 다른 견해를 표명.

<야선 개학 겨냥한 것으로 풀이>
야당 사람들은 이러한 강경한 경고 발언이 다분히 학교가 개학하는 오는 3, 4월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한다. 야당과 학생·재야가 반정부 활동을 강화, 시국의 수압이 높아질 경우 정부가 이에 맞서 긴급조치권 내지 이에 준 하는 대응책을 쓰리란 것은 야당 가의 일반적 관측.
야당 안에는 이러한 정부의 강경책 발동의 잠재성을 놓고 두 흐름의 시국관이 깔려 있다.
하나는 합헌 적 방법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목표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개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의 기틀을 마련, 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달성해야 한다는 입장. 다른 하나는 평화적 정권교체가 바람직하긴 하나 우선 정권을 바꾸는 게 중요하므로 정권교체의 방법에는 별로 구애하지 않는 생각이다.
이철승 국회 부의장의『중도통합기반 구축제의』는 이른바 온건 노선의 바탕에서 나온 것. 이 부의장 외에 당내 고흥문 정해영 이충환 김원만 정헌주 신도환 이민우 이중재씨 등 이 이런 입장을 내세운다. 그러니 이들은 대여관계도 부드럽다.
이에 비해 강경 노선은 정부가 어떻게 나오든 개헌·민주회복 요구를 강력히 전개, 막다른 길로 몰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경 조치의 악순환은 그만큼 정부 입장을 약화하는 것인 만큼 애써 피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비폭력·비 타협·불복종』을 내세운 김영삼 총재의 투쟁노선이 이를 대표한다.
통일당·사회당·재야·출감자·학생 등 범 야 세력도 그 내부에 온건 논이 있다. 그러나 원내정당에 비해선 그 색채가 강경하기 마련. 신민당의 체질이 어느 때보다 재야세력의 주장을 정치적으로 소 화하기 힘든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정치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