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문 앞 감격 사흘…엇갈린 희비|긴급조치위반 구속자 석방 마지막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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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철문 앞의 감격은 연 사흘째 계속됐다. 그리고 옥문은 다시 닫혔다. 지학순 주교·김찬국 교수·강신옥 변호사·두 일본인 등 23명이 마지막으로 출감한 17일 서울과 안양의 교도소주변은 또 한 번 환영인파의 환성과 만세, 종교인들의 찬송가로 붐볐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수많은 성직자와 교수·학생 등 각계인사들의 뜨거운 마중을 받으며 풀려 나온 출감자들은 축하의 종이 울려 퍼지는 교회로 달려가 감사의 기도를 드리기도 하고 가족들의 품에 안겨 뜬눈으로 자유의 첫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이날 교도소 주변에는 석방에서 제외된 구속자 가족들이 출감되는 구속자들을 환영 나왔다가 철문이 다시 닫히자 풀려나지 못한 구속자들의 이름을 외치며 철문을 두드려대는 모습도 보였다.

<김추기경도 마중|서울구치소>
구속자 석방 3일째인 17일 밤 서울구치소에서 제일 먼저 출감한 구속인사는 지학순 주교. 이날 하오9시쯤 구치소미결감쪽 문이 열리자 흰 명주한복을 입은 지주교가 흰 머리카락을 바람에 날리며 미리 마중하러 들어갔던 김수환 추기경과 함께 걸어나왔다.
지주교가 신도들에게 둘러싸여 나오는 동안 5백여명의 선도들은 『지 주교 만세』『민주주의 만세』와 『우리 승리하리라』는 찬송가를 소리높이 불렀다. 어느 여신도는 빨간 장미꽃 다발을 전하기도 했다.
이어 하오 9시14분쯤 두 번째로 김찬국 교수가 구치소문을 나서자 김 교수를 맞으러 나왔던 동료 교수와 제자 20여명은 『만세 김찬국 교수님』『환영-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라고 쓴 「피킷」을 흔들며 환호했고 학생들은 『김 교수 만세』를 외치며 헹가래쳤다. 하오9시25분 세 번째로 철문이 열리자 비교적 건강한 모습의 강신옥 변호사가 회색한복을 입고 나와 부인 길영자씨(36), 형 강신정씨(55·농장경영) 등의 마중을 받았다.
강 변호사는 『다같이 나오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준비된 차로 서대문구 성산동9의4 자택으로 직행.

<"복학되면 공부하고싶다">
네 번째로 이날 하오 9시33분쯤 출감한 이철군(26·서울대 문리과대학사회학과3년)은 동료학생들로부터 헹가래를 받으며 『이번 석방이 엄청나게 조작된 정치연극이 해결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새시대의 새질서인 민주주의의 꿈이 목전에 다가왔다』면서 수척한 얼굴로 환한 웃음을 던졌다. 이군은 앞으로 복학기회가 주어지면 우선 공부를 하고 본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이날 하오 9시52분쯤 풀려 나온 김윤양(22·서강대 영문과4년·수필가 김소운씨 영애)은 『「그리스도」의 훈련의 채찍으로 알고 옥살이를 했으나 자유를 얻어서 기쁘다』고 첫 소감을 말했다.
이번 사건의 홍일점인 김양은 서울구치소문을 나설 때 어머니 김한림씨(61·한국여성유권자연맹회원)가 「넣어준 붉은 고름을 단 흰 저고리와 다홍치마를 입고 미소를 짓는 여유마저 보였다. 김양이 나올 때까지 서강대 영문과동창 20여명은 『홍일점 김윤 만세』라 쓴 「플래카드」를 들고 『유관순 누나』 등 노래를 불렀다.
한편 이날 이들이 모두 석방된 뒤인 하오 10시쯤부터 10분 동안 서울대 문리대학생 30여명이 교도소 철문을 두드리며 석방에서 제외된 『유인태 내놓아라』 『이현배 석방하라』는 등 구호를 외쳤다.

<두 일인 뒷문 출감|안양교도소>
안양교도소의 철문이 다시 열린 것은 17일 하오 7시7분쯤. 이에 앞서 교도소 측은 「다찌까와·마사끼」(태도천정수·29) 「하야까와·요시하루」(조천가춘·38) 등 두 일본인을 하오 4시15분쯤 교도소 뒷문으로 슬그머니 출감시켰다.
이날 안양교도소를 출감한 사람들은 두 일본인과 유근일씨(37 중앙일보논설위원) 등 모두 18명.
하오 7시7분 흰 바지저고리 차림으로 정태광군(28·서울대졸)이 처음으로 교도소 정문을 나서자 마중 나온 친구들은 『민중은 승리한다. 민주주의 만세』라고 쓴 「플래카드」를 들고 정군을 들어올리며 환호했다.
7시16분쯤 나온 유근일씨는 마중 나온 아들 정엽(7), 정묵(4)을 껴안고 아이들의 뺨에 얼굴을 비비면서 먼발치에 서있던 부인 이정민씨(34)를 보고는 『내게도 아내가 있었던가』하며 껄껄 웃었다.
유씨는 어머니 윤수현씨(62)를 얼싸안고 『무척 걱정하셨지요』하며 위로했고 두 아들에게는 『내가 아빠다, 아빠를 알아볼 수 있어』하며 다시 아이들을 안아 올려 주위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유씨는 출감소감을 『나의 희생이 이 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밑거름이 됐다면 더 없는 영광』이라며 『다시 언론인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들이 풀려날 것을 기대하고 토요일 대구에서 달려온 이강철군(경북대)의 어머니 이덕영씨(54)는 같은 감방에 있다가 출감한 서중석군을 붙들고 아들의 소식을 애타게 물었다.
반공법에 묶여 못 나오는 김효순군(23·서울대 문리대정치학과 졸)의 누이 김정숙씨(36)와 양숙씨(33)는 『감옥 안이라도 몸과 마음이 편하니 걱정 말라고 전하더라』며 한 출감자가 소식을 전하자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날 출감한 서중석·석인성·정윤광·정화영·임규영군 등 5명은 교도소밖 대기자 휴게실에서 30분간 기자회견을 갖고 『심문과정에서 여러 가지 견디기 어려운 고문도 당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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