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입시 문제를 쉽게|어학교육 30년…그 문젯점을 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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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영·독·불어 등 중·고교 외국어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우선 대학 입시문제가 쉬워져야 한다는 주장들이 최근 새삼 강력히 대두되고 있다. 주 5시간씩 10년 가까이 영어공부를 하고도 편지 한 장 못쓰고 인사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 우리나라 외국어 교육의 모순은 그 개선보다는 악순환만을 30년 동안이나 되풀이 해 온다는 비난을 많이 받아 왔다. 수많은 외국어 교육 방법론이 나왔지만 독해력이나 작문·회화 교육의 어느 하나도 성공을 거두지 못한 채 모두 실패했다는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견해다. 그 단적인 예가 그처럼 독해력을 강조하는 6년간의 영어공부를 하고 입학한 대학생들의 극소수가 원서를 해득할 뿐 대부분이 원서 강독을 외면한다는 사실이다. 정상적인 외국어 교육을 저해하는 요인은 입시위주의 교육방침 외에도 시설, 교사의 자질, 교수방법 및 교과 과정 등의 많은 문젯점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개선의 한계성도 있긴 하지만 노력한다면 풀어 나갈 수 있는 현실 가능한 문제도 많다. 외국어 교육전문가들과 최근의 교육좌담회 등에서 그 개선책으로 지적, 제언한 문제들을 중심으로 외국어 교육의 문젯점을 살펴본다.

<강박관념서 벗어나 실 용어 배우게 해야>입시정책
너무 어려운 대학 입시 문제 때문에 중·고교 외국어교육이 비뚤어지고 있다. 단적인 예가 1백점 만점에 60점이면「톱」이라는 세칭 일류고교의 모의고사 영어시험 문제들.-
그러니까 중 이하의 학생들에게는 이해 불능한 문제로 외국어 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대 어학 연구소장 황찬호 교수는『대학의 입시문제가 쉬워져야 일선 교사들도 입시 강박관념이 없이 회화나 작문 등을 시킬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될 것』이라면서 대학이 요구하는 기본 외국어 실력의「표준척」을 시급히 만들어 놓고 정도에 맞는 기본적인 쉬운 문제를 출제할 것을 강조한다.
어쨌든 현재까지의 대학입시 영어문제들이 문교부 교육과정에서 요구한 중·고교 6년 동안의 4천 단어만을 외어 가지고는 40점도 못 맞출 정도의 어려운 문제들이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대학이 이처럼 어려운 문제들을 출제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출제를 둘러싼 불신풍조 때문이라는 것-.
적어도 6개월∼1년 동안의 출제 연구기간을 두고 기초적인 문제 등을 충분히 연구 선정하지 않고「기밀보장」때문에 출제위원을 연금 상태로 가두고 단 기일에 문제를 내게 하니 자연히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각 대학이 공동출제를 해서라도 많은 전 교수들이 참가해 문제를 다듬는게 좋겠다』고 황 교수는 말한다.
최근 고대 독일문학연구소(소장 한봉흠 교수)가 주최한 독어 교육에 관한 학술 좌담회에서도 올해 각 대학의 독어 입시 문제들이 너무 어려웠다는 의견들이었다. 좌담회에 참석했던「브로이어」씨(독일문화원근무)·「막투세」씨(독일문화원근무)등 독일인까지도『문법문제 같은 것은 현재의 고교 독일어 교육시간으로는 소화하기 힘든 내용이었다』고 지적했다.
또 이들은 문법이나 어려운 작문 문제보다도「산 독어」가 될 수 있는 실 용어 출제를 거듭 촉구했다.
새 투자나 노력 없이도 대학 당국들이 개선할 수 있는 현실 가능한「쉬운 입시문제」출제는 내년부터라도 꼭 실현 돼야겠다는게 외국어 교육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요망이다.
서울대 어학 연구소는 정도이상으로 어려웠던 현재까지의 외국어입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학이 요구할 수 있는 기본실력을 측정할 수 있도록 외국어실력의 급수제도를 연구 개발할 계획이라고 한다.

<어학 실습실 활용을 문교부서 권장해야>시설
현재의 한국 경제 형편상 60명인 학급 규모를 줄인다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간단한 어학 실습실을 두어 듣는 훈련을 시킨다는 것은 문교부가 적극 권장만 해도 가능하다.
현재 어학 실습실이 있는 중·고교는 서울의 10여개교 뿐이지만 이들조차도 시설을 거의 활용치 못하고 있다. 또 시골학교에까지 많이 보급된「테이프·레코드」도 외국어 교사들의 자질 부족으로 체육이나 무용시간이 사용하는 예가 많다.
또 일선 학교는 경쟁적 관심으로 4백∼5백 만원씩을 들여 훌륭한 어학 실습실을 시설, 전시 효과는 느리지만 40만∼50만원 정도면 만들 수 있는 간이 실습실을 마련하려고는 않는다. 녹음기에 연결해「스피커」만 교실에 붙여 놔도 학생들의 듣는 공부는 충분히 시킬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이미 있는 대학교들의 어학 실습실도 그 이용법이 잘못돼 실패했다』고 말하는 김영숙 교수(이대)는 실습실은 정규수업의 하나로만 사용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시간 나는 대로 쓸 수 있도록 개방할 것을 주장했다.

<「주5시간」수업은 유창한 회화 불가능>교수 방법 및 교과 과정
우선 교사들의 자질향상과「읽기와 문법」만 잘하면 된다는 인식이 고쳐져야 한다. 김영숙 교수는「외국어 교육은 우선 듣기·말하기에 치중하고 읽기·쓰기는 뒤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교사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교재와 교구의 개발을 촉구했다.
그러나 황찬호 교수는 이와는 반대로 현 우리 실정으로는 읽기→쓰기→말하기 순의 외국어 교육이 바람직하며『근래 하역이 증대하고 해외 인력 수출이 늘어나 사회적 수요가 급증한 회화 교육 같은 것은 국립 언어훈련「센터」같은 특수기관을 세워 해결하는게 좋겠다』는 의견-.
또 황 교수는『읽기·쓰기·말하기의 삼위일체라는 전통적인 외국어 교육의 이상에 너무 과민할 필요가 없다』면서 현실 가능한 회화교육 해결방안의 하나로 미국 평화 봉사단원들의 활용을 적극 권장한다.
즉 현재 중·고교에 배치돼 있는 봉사단원들에게 전반수업을 맡길 것이 아니라 소질이 있는 학생만 골라 1개반 정도를 편성, 매일 특별 활동식으로 집중적인 회화 훈련을 시키면 적어도 1개교에서 회화를 잘하는 학생 50명씩은 길러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주5시간씩 6년간의 외국어 공부로는 회화를 할 수 있기에는 절대 시간이 부족할 뿐 아니라 그 같은 인식이나 이상론은 버려야 한다는게 황 교수의 주장이다. <이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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