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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복원계획계기로 그 전모를 알아본다|광희지구·광희 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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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8면

서울시가 올해부터 내년까지 2년 동안에 총 13억8천5백79만원을 들여 복원키로 한 서울의 성곽은 이 태조 5년(1396년)에 군사상방어의 목적으로 축성된 것. 창축 때 성곽의 북은 백악(북악산), 동은 낙타산(낙산), 서는 인왕산, 남은 목멱산(남산)으로 이어지며 그 길이는 1만8천1백27m(5만9천5백자). 석성과 토성으로 쌓은 이 성곽의 정북에 숙청문, 정동에 흥인문(동대문), 정남에 숭례문(남대문), 정서에 돈의 문(서대문)등 4대문을 세웠으며 이 대문 사이에 홍화문(혜화문, 일명 동소문)·광희문(수구문)·소덕문(서소문)·창의문(자하문)등 4 소문을 두었다. 이 같은 성곽은 세종 때(3년)와 숙종 때(30년) 두 차례의 큰 수축과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쳐 보존돼 왔으나 일제침략이 시작된 후 강희 원년(1907년)에 남대문과 서대문근처의 일부성곽이 철거당한 것을 처음으로 난을 겪기 시작, 그 후 도로확장 등 도시계획에 밀려 성벽과 문 지의 많은 부분이 파손된 채 겨우 형태만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복원대상은 현존하는 성곽 l만8백80m와 광희문·숙청문 등 문루 2채다. 복원공사를 계기로 성곽의 옛 모습과 실태, 복원계획, 그리고 복원에 따른 각계의 의견 등을 알아본다.
광희문(중구 광희동105의2)일대의 성벽은 창축 때(이 태조 5년) 자연석으로 거칠게 쌓았으나 숙종 때의 큰 수축을 통해 정교하게 다듬어진 정방사각형의 돌로 바뀌었으며 광희문도 창축 때 만들었으나 오랜 풍설과 병화로 문루는 없어진 채 홍 예만 남아 있다.
성벽은 수직선이며 돌과 돌 사이가 꼭꼭 들어맞아 튼튼하고 겉보기가 섬세하며 아름다운 것이 특색.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광희문에 연이은 문의 날개이기 때문에 다른 성벽과는 달리 큰돌로 쌓여진 것이다.
광희문은 서소문 등과 함께 4대문 사이에 세운 4소문의 하나. 성안에서 성밖으로 시체가 거쳐나가는 곳이었으며 이 때문에 「시구문」으로 불리고 있다.
이곳 성벽의 양쪽에 무허가불량주택 1백40여채가 꽉 들어차 있으며 이중 중구광희동쪽 50채는 2층 양옥집이 대부분이며 성동구신당동 쪽의 90채는 점포와 움막집이 많다.
이들 가옥의 일부는 성벽 한복판을 파내고 움막처럼 들어섰으며 성벽을 장독대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
특히 광희문 교회(성동구 신당동) 앞 시민 목욕탕 근처의 2층 집들은 성벽을 축대로 이용했기 때문에 철거를 둘러싸고 말썽을 빚을 우려가 있다.
복원공사는 광희문의 문루(12평)와 일각 문을 세우고 성벽 위에 여장을 쌓는 등 옛 모습을 고증 받아 되살리는 것으로 지난해 12월 이미 착공했다.
복원될 문루는 정면길이가 12m, 측면길이 9m이며 성벽의 높이는 6m. 홍 예에 두께1.6mm의 무쇠 판으로 만든 철 대문을 달고 어른의 힘으로도 들어 올릴 수 없는 빗장을 달 계획이다.
이곳의 공사는 홍 예가 퇴계로7가 간선도로에 들어서 있기 때문에 홍 예를 헐어 50m쯤 옮겨 세우기로 했으며 광희문 주변에 6백여 평의 녹지대를 조성, 시민의 휴식처로 활용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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