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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투표…그 찬반을 넘어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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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흔히 우리는 해방 30년을『성년의 30년』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성년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기에는 미 치감을 여러 모에서 느낀다. 굴곡 많은 정치에서 그렇고 일그러진 사회윤리에서 그렇다.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30년 사에서 우리는 너무나 엄청난 격동을 겪었고 그러는 동안 우리는 사회성숙을 향한 조용한 통찰을 갖지 못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우리는 너무나 북적거리기만 했다.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내외의 거센 바람이 계속 밀어닥쳤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허둥대는 버릇이 거의 항상 화되었다. 함께 뒤범벅이 되어 떠드는 과정에서 어떤 질서가 생긴 것인지를 미처 생각지 못해보고, 그저 웅성거리기만 하여온 우리가 아닌지 한심한 생각을 벗을 길이 없다.
웅성거린다는 것은 정연한 논리를 전제로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철학 있는 행동이 될 도리가 없다. 오히려 마음의 주저와 떳떳한 행동에의 불안이라고 함이 옳을 것이다.
우리가 이제『성년의 국민』이 되고자한다면 우리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가 살피고 결정하는 개인적인, 그리고 사회적인 분별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오늘의 현실은 위기와 혼돈으로 실명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국민투표라는 과제를 맞이했다. 엄밀히 얘기한다면 없었더라면 좋았을 국민투표일지 모른다. 우리 정치문화가 아직도 미숙한 탓으로 겪게 된 또 하나의 정치적 굴곡인 것이다.
그러나 질문은 이미 던져져 있다. 남에 관한 것이 아니다. 바로 우리들자신의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국민 스스로가 판단하고 대답해 결정지을 문제다. 남의 문제처럼 빈정거릴 수도 없고, 이웃 따라 소풍가듯 할 수도 없는 중대한 선택에 직면한 것이다.
국민투표는 선·후진 외 많은 나라에서 실시되고 있다.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 식민지처리문제, 심지어 이혼법의 존폐나, 외국인노동자의 추방문제 등 갖가지 문제를 놓고 국민투표를 실시한 나라가 있으며,「프랑스」의「드골」은 재임 11년 동안 다섯 차례나 국민투표로 신임을 물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질문은 현행 헌법체제의 찬부와 대통령의 신임여부다. 구체적인 정책 안은 아니지만, 던져진 사안은 내외의 막중한 과제와 모든 정책을 포괄한 기본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는 여당과 야당의 울타리를 넘는다. 따지고 보면 정당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거르는「필터」장치에 불과한 것. 토의의 과정일 수는 있으나 최종의 결정권이나 이익과 책임의 귀속점이 될 수는 없다.
국민투표에 대한 여-야당의 입장은 이미 밝혀져 있다. 비록 제약된 한계 속에서나마 그 나름의 집단적인 이해 판단 파 정치적 전술이 마련되어 있다. 국민과 정당이 유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대한 결정에서 국민들은 정당 적 차원을 넘어 조용히 판단하는 일도 필요할 적이 있다. 웅성거림에 휘말리지 않는 원숙이 아쉬운 것이다.
위기와 혼돈은 어떤 한사람이나 집단의 정치적인 공헌이나 개혁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사회성원전체의 참여와 책임아래 극복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공동의 사안에 대해 각 사람이 참여하고 저마다 권리와 책임을 갖는 일이다. 참여는 정당한 방법에 의한 의사표시와 권리의 자각에서 비롯되며 그 책임은 개인이 개인에게 지는 책임인 동시에 국민 서로가 다함께 지는 책임이다.
여자는 모자를 살 때 반드시 여러 개를 써보고 하나를 선택하며, 며칠 후에는 으레 껏 한번쯤 그 선택을 후회해 본다는 외국의 속담이 있다.
학생들이 소풍을 갈 때는 학급합의에서 갈곳을 상의한다. 결정이 잘 안될 때는 선생이 나서서 산파역을 한다.
모자를 사는 개인적 결정이든, 소풍을 가는 합의적 결정이든 그 결과는 돌이켜지지 않으며, 그 이익과 책임은 결국 결정 자에게 귀속된다.
국민투표는 다수 자에 의한 결정이기는 하지만 고립한 다수자의 결정이라는 점에서 조정이 가능한 학급회의, 가족회의, 내각회의 같은 합의제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고립한 다수자의 결정에서는 주어진 문제에 대한 결정자의 자각과 분별이 다른 어떤 경우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고립한 다수 인이 제각기 저마다의 의사를 표시하지만 그 의사로 집적된 결정은 바로 고립한 개인의 안전과 폭리에 직결되고 고립만 개인을 묶고 있는 사회전체의 질서와 발전을 좌우한다. 정치가 국민생활의 전면에 스미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비 정치인의 정치참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사회엔 정론이 풍성하다. 그런데 그 많은 정론가운데 냉소적이고 체념적인 것이 격조 높은 것으로 대접받는 수가 많고, 독선이 힘을 지닌 것으로 착각되는 수가 많다. 냉소·체념은 필경 유교적 은둔과 이조 파당정치의 유산일지도 모르며, 독선주의는 그것이 서투르게 탈바꿈한 것이 아닐까. 이중 어느 것도 떳떳한 참여정신에는 배치된다.
올바른 정치지도는 다수의사를 합리적으로 구축해 나가면서 그 다수의견 위에 지도력을 신장해 나간다. 방향선택이 잘못된 강력한 정치지도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한편 현실적인 수습책을 수반하지 못하는 단선적인 이념지도는 강력한 힘의 뒷받침을 받을 수 없다.
우리의 짧은 정치사에서 정치지도의 상은 어떠했을까. 스스로의 결단을 과신한 나머지 다수의사의 뒷받침을 받기에 충실하지 못했거나, 정통성에 치우친 나머지 현실성 없는 공론에서 제자리걸음한 경우가 많았다고 해서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우리의 정치적 미 숙은 이 같은 원숙치 못한 그간의 정치지도의 서글픈 과정에 그 원인의 대부분이 있는지도 모른다..
민주주의의 실현도정은 무한히 길다. 이제 우리는 성년의 국민으로서 우리의 정치상황을 살피고 우리 스스로의 문제에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조용히 국민투표에 참여함으로써 미숙하지 않은 질서와 기강을 사회적으로 잡아가자는 마음가짐을 가져야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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