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카페] '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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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 자신있게 보기 1,2/이주헌 지음, 학고재, 각 권 1만7천원

"난 그림을 볼 줄 몰라서…" 머리를 긁적이던 이들은 말한다.

"지나치게 정색하고 보지 않아도 미술을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은 없을까? 전시장의 그림 감상하듯 편안하고 여유 있게 읽으면서도 실질적인 정보를 쏠쏠히 얻을 수 있는 책은 없을까?"

미술평론가 이주헌(42.학고재 화랑 관장)씨는 많은 독자들이 평소 품었음직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답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평범한 미술애호가를 위해 쓰여졌다…미술감상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하고 행복한 활동인가를 일깨우고…미술감상을 통해 삶에 만족감을 느끼고 삶의 가치를 새롭게 확인하도록."

이씨가 책 머리에 쓴 이 글은 '미술감상 대중화의 길라잡이'를 자임하는 지은이가 진솔하게 털어놓은 저술 목표다.

1995년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1.2'를 낸 이래 '내 마음 속의 그림''미술로 보는 20세기''신화, 그림으로 읽기''이주헌의 프랑스 미술 기행''명화는 이렇게 속삭인다''느낌이 있는 그림 이야기' 등 10여 권의 미술감상 안내서를 낸 그는 이 분야를 개척한 전문 저술가 1호로 꼽힌다.

'50일간…'이 10만부가 넘게 팔려나간 것은 '이주헌식 글쓰기'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와 이런 책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미술 애호가들의 갈증을 입증했다.

해외여행이 늘어나고 미술관 관람이 일반화하면서 편안한 안내서가 필요했던 때도 맞춤했다.

미술사학자 노성두, 작가 강홍구.한젬마, 화상 이명옥씨 등 '미술 읽어주는 전문가'들이 줄줄이 뒤를 잇는 현상도 그의 앞선 활동에 힘입은 듯 보인다.

'이주헌 표' 미술책이 독서시장에서 믿음직한 상품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그 답이 이 책 속에 들어있다.

'미술감상 어떻게 할 것인가?'부터 '미술시장'까지, 서양미술사를 장르와 유파. 중심으로 스물 다섯개 장에 나눠 쓴 글들은 "자연을 감상하듯" "눈으로 보아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에 충실하기에 독자는 곧 지은이를 따라 책 속 화랑으로 들어선다.

이씨는 홍익대 서양화과를 나온 화가 출신이다. "배경의 건물이 미색으로 밝게 빛나는 것으로 보아 도시에는 지금 햇빛이 밝게 내리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차의 김이 파란색을 띤 것은 기차가 방금 차양 밑으로 들어와 그림자가 졌기 때문이다."

프랑스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1840~1926)의 '생 라자르역'을 해설한 이 대목은 그림을 그려본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구절이다. 게다가 그는 일간지 미술 담당 기자로 필명을 날렸던 경력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현대사회의 차가운 시선, 기계적인 시선과 만나게 된다. 하이퍼 리얼리즘 화가들이 풍경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것도 어쩌면 이런 소외와 냉대의 시선일지도 모른다." 사회사적인 시각을 견지하는 그의 눈은 날카롭다.

이것 뿐이라면 좀 부족하다. 유행처럼 쏟아져나오는 여느 미술책과 이씨의 책이 다른 까닭은 책 제목 '자신있게'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서양화는 말 그대로 서양인들이 서양에서 생산된 재료로 서양세계의 얘기를 그린 그림이다.

그들이 쓴 해설서로 한 다리 걸쳐 보지 않고 '우리 눈으로 해석해 보겠다'는 부드러운 뚝심이 좋다. 이주헌씨가 그린 한 폭의 서양미술사 풍경으로 한국산 미술책이 한 단계 훌쩍 올라서게 된 셈이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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