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셀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산시성 특산 면요리를 만들 때 나는 소리에서 유래한 56획 한자 ‘뱡’(사진 왼쪽). 시진핑 주석이 롄잔 국민당 명예주석 부부에게 대접한 요리 세트(가운데). 시 주석의 언급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대만 성운대사의 저서 『백년불연』 한 질(오른쪽).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중국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지난 연말 ‘시진핑 만두세트’에 이어 총 9권 3684쪽에 이르는 대만 유명 승려 성운대사(星雲大師·87)의 저작 『백년불연(百年佛緣)』을 베스트셀러로 만들었다. 중국 출판계에서는 ‘시진핑셀러’의 출현이란 말까지 나온다.

 시 주석은 지난 18일 중국공산당 총서기 신분으로 롄잔(連戰) 대만 국민당 명예주석 일행과 베이징 댜오위타이(釣魚臺) 국빈관에서 회담을 가졌다. 시 주석은 이날 참석한 성운대사에게 “대사가 내게 준 책을 전부 다 읽었다”고 말했다. 상하이 ‘신보(晨報)’에 따르면 성운대사는 이미 지난해 2월 롄잔 명예주석과 함께 베이징에서 시 주석을 한 차례 만났다. 당시 성운대사는 “시 주석의 질박하고 예지 넘치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 층 더 높이 올라 더 멀리 바라보고, 양안(兩岸·중국과 대만)을 더 넓은 곳으로 인도하길 바란다”며 ‘등고망원(登高望遠)’이라는 글을 써 시 주석에게 선물했다.

 당시 인연은 책으로 이어졌다. 이미 양안에서 300여 종 200만 권 이상을 판매한 유명 작가이기도 한 성운대사는 지난해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인생을 구술역사 형식의 『백년불연』에 담았다. 본인의 인생 역정과 함께 장제스(蔣介石) 대만 전 총통과의 만남,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등 중국 지도자들과의 인연 등을 담은 『백년불연』은 지난해 4월 대만에서 출간돼 6개월 만에 5만 질이 팔렸다. 지난해 9월 중국 서점가에서도 판매되기 시작하자 대사는 시 주석이 수신(修身)으로 치국(治國)을 이룰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책을 선물했다.

 시 주석의 말에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중국시장 판권을 가진 삼련서점 상하이지사의 왕친웨이(王秦偉) 총경리(사장)는 “한 질 정가가 689위안(약 12만원) 인 책이 이틀간 총 1600여 세트가 팔렸다”고 말했다. 출판사는 초판 2만 권이 매진돼 추가 인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대학원장은 “시진핑 주석이 대만 서적인 『백년불연』을 다 읽었다고 의도적으로 밝힌 것은 대만과 대륙의 민심을 사로잡고, 양안의 문화 정체성을 통합하기 위한 계산된 언행”이라며 “인기가 떨어진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 이후까지 고려한 포석이 읽힌다”고 분석했다.

  ‘시롄(習連, 시진핑·롄잔) 세트’라 이름 붙은 58위안(약 1만원)짜리 산시(陝西)성 특산요리도 인기다. 18일 시 주석은 회담이 끝난 뒤 부친과 고향이 같은 롄잔 명예주석 부부에게 고향 요리를 대접했다. 진(秦)나라의 수도였던 시안(西安)의 특산 면요리 뱡뱡면 등이 식탁에 올랐다. 뱡뱡면의 ‘뱡’은 56획으로 중국 간체자 기준으로 획수가 가장 많은 글자다. 무일푼인 선비가 음식값 대신 써 줬다는 글자다. 진시황이 산해진미를 마다하고 즐겼다는 전설의 요리다.

신경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