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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파견 영사, 증거 조작했나 조작 증거 전했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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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호 03면

조백상 중국 선양 총영사(오른쪽)가 21일 국회 통일외교위원회에서 간첩 조작 의혹을 몰고 온 증거 문건들의 입수 과정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그는 여러차례 증언을 번복하다 의원들에게 질타를 받기도 했다. 왼쪽은 함께 출석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 [뉴시스]

중국 선양(瀋陽) 한국 총영사관의 이모 영사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지난해 8월에 파견된 국가정보원 직원이다. 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는 검찰은 곧 그를 소환해 진술을 받을 계획이다. 그는 증거를 직접 조작했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이 조작한 증거를 검찰에 전달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논란, 어떻게 전개되나

이 영사는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34·중국명 유가강)씨의 간첩 혐의 재판에 검찰이 증거로 낸 서류의 입수·공증·전달에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21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조백상 선양 총영사를 불러 이 문건들의 출처와 검찰에 제공하게 된 경위를 물었다. 조 총영사는 문제의 서류들을 확보하는 과정에 이 영사가 주요 역할을 했다고 증언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증거 서류는 ①중국 허룽(和龍)시 공안국이 발급한 것으로 돼 있는 유우성씨의 출입경 기록(중국·북한 왕래 기록) ②허룽시 공안국이 출입경 기록을 발급했음을 증명하는 사실확인서 ③출입경 기록 해석 논란에 대한 답변 내용을 담은 중국 싼허(三合) 검문소의 정황 설명서 등 세 가지다.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는 지난해 12월 이 세 문건을 유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할 증거로 법원에 냈다. 이후 유씨의 변호를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변호인은 중국 정부에 이들 문건의 진위를 가려달라고 요청했고, 지난 13일 주한 중국대사관은 “위조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증거 조작 의혹이 공론화됐지만 유씨 사건에 대한 1차 수사를 맡았던 국정원은 “위조 서류가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검찰은 “위조 서류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지난 19일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위조 공방은 우선 검찰이 법원에 낸 자료를 어디에서 어떻게 구한 것이냐는 의문을 낳았다. 조 총영사는 이 문제를 풀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의 국회 증언에 따르면 선양 한국 총영사관이 중국 측에서 공식적으로 얻은 문건은 사실확인서(②)뿐이다. 그는 출입경 기록(①)은 사실확인서를 발급받아 달라고 검찰이 한국 외교부를 통해 보낸 공문에 첨부돼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 허룽시에 사실확인서를 요청해 받은 것도, 싼허 검문소의 정황 설명서(③)를 구한 뒤 총영사관의 번역 공증을 받아 검찰에 전달한 것도 이 영사라고 말했다.

세 문건 중 핵심은 출입경 기록(①)이다. 검찰이 유씨가 북한에서 보위부에 포섭됐다고 주장하는 시점(2006년 5월 27일∼6월 10일)에 그가 북한에 있었음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다. 조 총영사는 이 문서를 검찰의 협조 요청 공문에 첨부돼 있어 존재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1일 오전에는 “유관기관이 획득한 문서”라고 말하며 국정원 측이 확보했다는 취지로 답을 했다가 오후에 “검찰이 어디에서 얻어서 첨부해줬는지는 모르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 영사가 직접 또는 다른 국정원 요원을 통해 구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만약 위조된 것이라면 ‘구한 것’이 아니라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사실확인서(②) 입수 경위도 아직 명확하지 않다. 조 총영사는 “이 영사가 팩스로 요청해 팩스로 회신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직접 관계 당국을 접촉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주한 중국대사관의 주장대로 문서가 위조된 것이라면 이 팩스 회신 문서가 허룽시 공안국에서 온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선양 총영사관에서 이 영사의 공식적인 역할은 교민 보호 및 사건·사고 처리 담당이다. 수사 기관에 대한 협조도 업무에 속한다. 정청래(민주당) 의원은 그가 국정원 대공수사팀 요원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우선 조 총영사를 불러 증언 내용을 다시 확인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그가 국회에서 한 말 중에 뜻이 모호한 부분이 많아 직접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 총영사에 대한 조사 이후에는 이 영사를 소환할 계획이다. 문서가 조작된 것이라면 그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고, 최소한 이 사건의 경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을 위치에 있다는 판단에서다.

검찰은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검사장)이 지휘하는 진상조사팀을 가동 중이다. 노정환 서울중앙지검 외사부장이 실무 책임을 맡았고, 그 아래에 외사부·특수부·강력부 검사 4명이 배치됐다. 유씨 사건을 수사한 공안부 검사는 배제시켰다. 윤 부장은 “아직은 조사 단계에 있지만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곧바로 수사로 전환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최대한 속도를 낼 생각이다. 중국 현지 조사도 검토하고 있다. 중국 수사 당국이 먼저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할 경우 우리 검찰은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중국 측은 이미 “중국 기관의 공문과 도장을 위조한 형사 범죄 혐의에 대해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18일 대검 간부회의에서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증거가 조작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는 것만으로도 검찰의 신뢰와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이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의혹 사건
서울중앙지검이 지난해 1월 서울시청 주무관 유우성씨를 국가보안법상의 간첩 혐의로 기소한 사건. 검찰은 국가정보원 대공수사팀의 조사를 토대로 화교 출신인 탈북자 유씨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돼 탈북자 200여 명의 신상 정보를 넘겨줬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1심 재판부는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유씨는 8개월 만에 구치소에서 석방됐다. 그러자 검찰은 항소하며 중국 당국이 발행한 것으로 돼 있는 유씨의 북한 출입국 기록을 추가 증거로 냈다. 문서에는 유씨가 2006년 5월과 6월 사이에 2주 동안 북한에 체류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유씨 변호인은 이 서류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중국 정부에 진위 파악을 요청했다. 주한 중국대사관은 지난 13일 문서가 위조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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