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을 위한 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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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오늘 우리가 국가적으로 처해 있는 상황은 위기라고 규정해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기에 우리의 체제에 관한 공방이 심각하게 벌어졌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면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는 이 위기는 어떤 종류의 폭력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타개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위기는 대화를 통해서 극복될 수밖에 없다.
대화가 요청된다는 이야기도 너무 흔하게 되풀이되었다. 그래도 대화는 좀처럼 궤도에 오르지 않는다. 대화가 제 궤도에 오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조건들이 실현되어야 한다.
첫째로 대화를 위해서는 모든 종류의 폭력이 배제되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위협을 주는 권력의 폭력뿐만 아니라 상호 이해를 배제하는 극단적인 언어의 폭력도 대화를 불가능하게 한다.
둘째로 정부는 야당과 그 동조 세력의 말을 들으려고 하고 야당과 그 동조 세력은 반대로 정부의 주장을 들으려고 해야 된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선입관을 초월해서 상대방의 참뜻을 알아보려고 해야 된다. 폭력적인 언어에 담긴 일방적인 주장만의 되풀이는 대화를 불가능하게 한다. 참으로 자신이 있는 사람은 남의 말을 인내롭게 경청할 수 있다.
세째로 정부·여당과 그 비판 세력은 각각 정열이 담겨 있고 따라서 감정으로 물들어 있는 구호만을 되풀이하지 말고 자기의 주장을 이성적인 언어에 담고 그 논거를 제시해야 된다. 우리 나라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언제나 거기에는 충분한 논거가 빠져 있다. 논거는 대화를 위해서는 매우 중요하다. 충분한 논거를 찾는 과정에서 자기의 주장이 더 적절하게 수정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네째로 성공적인 대화를 위해서는 그 참여자들은 서로 자기를 상대방의 위치에 가져다 놓고 상황을 판단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자기를 다시 성찰할 필요가 있다. 정부·여당의 인사들은 자신을 야당과 그 동조 세력의 위치에 가져가서 오늘의 사태를 판단해 보자. 그리고 야당과 그 동조 세력은 오늘의 상황 아래서 정권의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위치에 자신을 가져다 놓고 그들을 이해해 보자.
다섯째로 대화에 임하는 양편은 모두·자기들의 주장이 현재의 형식대로 그대로 절대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는 독단을 포기해야 한다. 대화를 통해서는 양편이 모두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 지식인들의 과제는 이러한 대화를 성립시키는 것이다. 기분대로 하면 억눌러 버리든지 뒤엎어 버리고 싶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늘의 중대한 시기에 있어서는 우리의 파멸을 가져온다.
정부·여당을 지지하는 보좌관, 평가 교수, 기타 지식인들은 그 특수한 「카테고리」들을 우선 괄호 안에 넣어 두고 일반 지식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들로 대화에 나서라. 그것이 그대들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 반대 비판의 지성인들은 민족 국가적으로 모험을 할 수 없는 오늘의 위기를 인식하고 믿음직한 대안을 이성적인 언어에 담아서 대화에 나서라. 이것이 그대들의 의무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오늘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데 이바지하자. 【이규호 <연세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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