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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올린 「문혁 세대」계승 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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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공은 10년만에 열린 제4기 전국 인민 대표 대회(전인대) 개최를 통해 ▲본격적인 제2단계 혁명 사회 건설로의 이행과 ▲혁명 2세대에 대한 수권 태세를 정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국무원 인사를 통해 당·행정부·군의 단결을 당의 완전 통할 아래 굳게 다진 것으로 보이며 국무원 인사는 혁명 세대가 제2세대에 무리 없이 권력을 이양하는데 주안점을 두면서도 다음 단계의 혁명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돼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10년간 그 개최를 둘러싸고 진통을 거듭해 온 제4기 「전인대」는 이미 오래 전부터 예상되어 온 ▲신 헌법을 통과시키고 ▲국무원 인사를 보완·쇄신하고 아울러 ▲「전인대」상임위원 2백18명을 선임, 17일에 폐막했다.
모택동(81) 중공 당주석이 불참한 가운데 열린 「전인대」는 특히 「당십전대회」에서 채택된 신 헌법을 통과시킴으로써 지난 4반세기간 국가 초창기의 혼란과 시련을 극복, 본격적인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지향한 결의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이는 64년 제3기 「전인대」가 열린 후 매년 열리기로 된 「전인대」가 그 동안 한번도 열리지 못한 채 당내 수정주의 관료자를 제거하기 위해 문화대혁명이라는 미증유의 혼란을 겪어야만 했던 쓰라린 경험에서 잘 드러난다.
또 문혁이 가라앉은 70년 당에서 작성한 새 헌법 초안을 전국의 광범한 토론에 붙였지만「임표 사건」으로 말미암아 다시 74년「비림 비공」이라는 대중 동원 방식의 대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여 잔존한 이단 세력을 제거치 않을 수 없었던 데서도 이를 잘 뒷받침해 준다.
따라서 이번 「전인대」는 모 노선에 대한 최종적인 승인을 뜻하는 것으로 중공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획한 것으로 보아도 될 것 같다.
그런데 모 등 혁명 세대는 국가 초창기의 어쩔 수 없었던 제파 연합 통일 전선식의 통치에서 노농 전정을 전제로 한 새로운 세대들에 권력을 순탄하게 이양하기 위해서는 당과 군부는 물론 특히 국무원의 인사 쇄신 내지는 보완 작업이 불가피한 것 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와 주은내(76) 수상은 이미 73년 「당십전대회」를 통해 당 상층부에 왕홍문(39) 등 신진을 대거 기용했고 또 74년 정초 1급군구사령의 대폭적인 전보를 단행하여 이를 면밀히 뒷받침해 왔다.
말하자면 이번 인사는 이러한 일련의 정리 작업을 마무리짓는 성격을 띠고 있다. 즉 행정 경험과 지도력이 다같이 빈약한 혁명2세대의 수권 능력 함양을 도와주기 위해 고령과 병환으로 국가 시책의 대강만을 교시할 뿐인 모·주를 대신해서 후견을 맡을 수 있는 왕진·곡목·여추리 등 원로들을 복권, 대거 부수상에 등용했고 이와 평행해서 장춘교·진석련·기등규·화국봉·진영귀·오계현·손건 등 제2세대를 부수상에 기용, 영구 혁명과 현 체제의 지속성을 동시에 조화시키려 한 것이다. 한때 유소기 다음의 실권파로 지목돼 실각되었던 등소평 부수상이 이 대회 기간 중에 당 부주석으로 승격된 사실은 실로 의미심장한데 등은 당의 뛰어난 이론가이자 조직가이며 주 수상 다음의 민완 행정가인데다 군부에도 많은 지면을 갖고 있어 모·주 등이 그들 이후의 과도 체제를 맡겨 혁명 세대와 제2세대들간의 연계에 있어 불안한 공백을 메울 인물로 최종 승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군 원로인 섭검영 원수(당 군사위 부주석·당부 주석)를 임표 사후 공석인 국방부장직에 앉힌 이번 인사는 군부에 대한 당의 강력한 통제를 하겠다는 뜻 외에도 모·주 이후 정권에 대한 군의 개입을 사전에 방지하려는 뜻도 있다.
이는 문혁 때 실각됐다가 최근 복권되어 지난해 말 새로 부총참모장에 기용된 양성무·왕상영 등의 사례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모·주 등은 한편으로 대중 동원 방식인 「문혁」이나 「비림 비공」 등을 통해 영속 혁명 수행에 방해가 되는 이단자들을 제거, 혹은 교화시키고 다른 한편으로 인사의 쇄신을 통해 한 조직이 경직화되는 것을 방지, 다음 세대에 혁명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주려는 그들의 먼 꿈을 주도 용의하게 진행시켜 온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권력의 승계 측면 이외에도 국무원 인사의 중요성은 지속적이고도 안정된 새로운 국가 건설이라는 혁명 세대들의 염원이 강력히 담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12월초 신화사 통신은 「비림 비공」의 종식을 선언하면서 새로운 「대약진」 운동을 시사했는데 이번에 부수상 12명중에 이선념·곡목·여추리·왕진 등 4명의 경제·농업 전문가를 기용한 것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 분명하다.
또 국무원 29개 신 부서 중에 20개나 되는 경제 관계 부서의 책임자를 모두 임명함으로써 그 동안 정체되었던 국가 경제 건설에 총매진 할 수 있는 정치 작업을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
12명의 부수상 중에 8명이 당 정치 국원 출신으로 메움으로써 당이 국가를 완전 통할하여 국가 건설의 중추 역할을 하겠다는 단호한 결의로 보이며 교관화의 외교 부장 인준은 현 대외정책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12명의 부수상 임명은 노쇠한 주의 업무를 덜게 하면서 전문 분야별로 효율적인 업무분담을 꾀하게 하는 배려인 것이다. 이번 인사의 특수한 측면은 진영귀(농민 혁명), 오계현(여·방직공) 손건,(10기 당 중앙위 후보 위원) 등 두 명의 신인이 부수상으로 기용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노동 계층이 고위 정책 입안 능력을 구비한 새 지도 세력으로 성장했음을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모·주 이후 등소평을 과도기의 인물로 선점하여 장춘교·진석련·화국봉·기등규 등이 주 수상 이후의 후계자로, 그리고 왕홍문·요문원·강청 등이 모의 후계 인물로 모·주 등이 의중에 두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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