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 … 뭐, 열심히들 하고 있으니 잘 되겠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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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장웅 IOC위원은 동료 위원에게 기자 쪽을 손짓하며 “위험한 인물이니 조심해야 해. 기자들은 말이 너무 많거든”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 북한을 대표하는 장웅(76) 위원에게 소치 겨울올림픽은 외로운 시간이다. 북한 선수들이 출전 자격을 따지 못했기에 홀로 5~7일(현지시간) 러시아 소치 래디슨블루 콩그레스 센터에서 열린 IOC총회에서 고군분투했다. 장 위원은 손을 들고 여러 번 발언을 신청해 “선수들 교육에 있어서 지원 프로그램을 더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동료 IOC위원인 영국 앤 공주와 함께 주거니받거니 발언을 하며 뜻을 모으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세련된 매너와 유창한 영어·프랑스어 실력으로 IOC위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그러나 IOC총회 마이크가 꺼지자 그는 침묵했다. 언론과의 접촉을 조심했다. 일본을 비롯한 외국 올림픽 전문기자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그였지만 유난히 몸을 사렸다.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한 5일 이전엔 IOC위원 전용 숙소인 래디슨블루 호텔 로비에도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IOC위원들과의 만찬이 열린 후 자기 방으로 돌아가던 장 위원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그는 한사코 사양했다. 17일 스노보드 메달리스트들에게 메달을 수여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그마저도 동료 위원들에게 양보했다. 자신이 조명을 받는 걸 극구 꺼린 것이다. 그러다 이산가족 상봉을 나흘 앞둔 16일 그를 로비에서 겨우 다시 만났다. 이곳 로비에 출입한 한국 매체는 중앙일보뿐이다.

 - 이산가족 상봉 잘 됐죠.

 “그건 정치인들이 하는 일이지. 나는 몰라요.”

 - 소치올림픽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기자 양반들 호텔 관련 문제가 많았다고 들었는데. 시설 운영 전반에서 좀 매끄럽지 못하긴 해도 경기 자체는 지금까지 훌륭하지.”

 그에게 소치의 다음 주인공인 평창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답변을 거부하다가 “뭐, 열심히들 하고 있잖아요. (평창도) 잘 되겠지”라고 짤막하게 답했다.

 장 위원은 그의 의전을 담당한 러시아 자원봉사자인 아나스타샤 리(19)가 그에게 “러시아어가 훌륭하다”고 하자 웃으며 “난 너희가 태어나기 전부터 러시아어를 했다”고 농담도 했다. 아나스타샤는 이후 기자에게 “전화로만 들으면 러시아인이라고 착각할 정도”라고 했다.

 기자를 피해 전용 차를 타려는 그에게 기자가 마지막으로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모델로 만든 소치올림픽 기념핀을 선물하자 그는 “이건 (푸틴 대통령을) 비난하려 만든 거 아니냐”며 거절했다. 기자는 소치올림픽 기념품점에서 우연히 찾아낸 러시아·북한 친선교류 기념우표도 건넸지만 “이건 난 이미 많다우. 기자 양반 가져가라우”라며 대신 기자에게 명함을 4장 건넸다. ▶IOC위원▶중국인민대학 명예교수▶(북한) 국제태권도연맹 회장▶베이징외국어대(BFSU) 명예교수의 명함이었다. 차에 탄 그는 품위있게 손을 흔들며 IOC호텔을 유유히 빠져 나갔다. 
소치=글·사진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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