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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족 출신 패잔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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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난 연말, 「인도네시아」령 「할마헤라」 제도의 「모로타이」란 작은 섬 「정글」 속에서 태평양전쟁 당시의 패잔병이 발견되었다. 대만 고사족 출신의 구 일본 제국 육군 1등병 「아슨바라린」, 일본식 창씨명은 중촌휘부.
작년에만도 횡정와 소야전에 이은 세번째의 일이라 과히 신기롭지 않아서인지 외신 「뉴스」도 전과 같이 대단치는 않았다. 아니, 어쩌면 그가 이민족이기에 한창 번영을 구가하기에 바쁜 일본으로서는 지난날의 상처가 난데없는 곳에서 들추어지니 좀 면구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고사족은 대만이 화란인·중국인·일본인에게 지배되기 전부터 이곳에 살고 있던 선주민족이다. 인류학적으로는 「말레·인도네시아」계에 속한다. 고원에서 화전을 일구거나 수렵으로 살아가던 대만의 인디언이다.
일본에 대한 그들의 저항은 치열했었다. 1930년10월에는 경찰관 주재소와 운동회를 열고 있던 학교를 급습하여 일본인 1백30명을 죽인 사건도 있었다.
이에 대한 일본의 보복은 3·1 독립 운동 때 우리가 당하던 일을 생각하면 된다. 비행기·산포까지 동원한 일본 육군이 2개월 동안이나 토벌을 계속하였다. 이를 피하지 못한 어떤 마을에서는 부녀자 1백여명이 집단 자살 한 일이 있었다. 또 끝까지 싸우던 이 부족의 어떤 추장은 일족의 아녀자 20여명을 제 손으로 죽이고 자결한 일도 있었다.
위협을 일삼던 일본군은 한편으로 회유를 잊지 않았다. 일본의 통치에 복종하면 「숙만」이란 이름으로, 저항을 계속하던 「생만」과 구별하였다.
그러다 태평양전쟁이 치열해지자 「제국 일본」은 고사족을 앞장 세워 그 용맹성을 이용하기로 작정하였다. 유관순의 마을에서 일본 육군의 지원병이 난 우리의 경우와 같다. 중촌휘부도 바로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가 일본의 패전도 모르는 채 정글에 숨어 달을 보며 삼끈으로 매듭지어 세월을 새기기30년, 고향의 지배자는 다시 중국인으로 바뀌고, 그가 충성을 다하던 일본과는 국교조차 끊어졌다. 그가 입대한 뒤에 태어난 아들은 이미 네 아이의 아비가 되었다. 헤어질 때 아직 수줍던 아내는 그를 기다리다 지쳐 개가한지 오래다.
그는 당지에서 상황을 듣자 바로 망향에 잠겼다. 『국파산하재, 성춘초목심』. 두보가 아니라도 전쟁을 겪은 사람이면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감회다. 그도 멀지 않아 고향에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옛 산천을 바라보며 이 오언율시를 몇번 읊어도 그의 가슴에는 영영 안 풀리는 그 무엇이 남을 것이다.
우리와 같은 멍에를 졌던 고사족 한 병사의 어깨에서 잊혀가던 우리의 어두운 그림자가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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