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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일권 국회의장·유진오 전 신민 당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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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유 박사께서 육성한 야당이 자꾸 원외 활동만 하겠다니 큰일입니다.』
-나는 정 의장한테 기대를 걸었는데 좀 어그러졌어요. 야당을 때려부수는 일이 생기고….
대좌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가시 돋친 입씨름이 대단하다.
그러나 정 의장이 『국회에 속히 들어오라는 신호이겠지요』라면서 현민의 손을 잡아 자리에 앉자 대화는 좀 부드럽게 진행됐다.
대화의 첫 항목은 개헌론. 『야당이 개헌을 전제하지 않으며 필요없다고 해서 국회에서 특위 구성이 안 된 것』이라고 정 의장이 설명하자, 유 박사는 『야당에서 개헌을 자꾸 내 세우는 취지는 개헌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인정하고 들어가야겠다는 정도의 뜻일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헌법학자이기도 한 현민은 『지금은 대통령이 개헌할 결심을 하지 않으면 사실상 어려운 것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고는 『개헌을 요구하는 민간인이나 야당도 자기들 힘으로 당장 개헌을 실현하자는 것보다 대통령의 결의를 촉구하는 것』이라고 풀어나갔다.
정 의장은 직접적인 토론을 피해 제도보다 공명 선거의 실시 여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
『신민당에서는 대통령 직선을 주장하지만 직선이든 간선이든 문제는 공정하고 깨끗한 투·개표가 기본이 된다고 봅니다.』
정 의장은 그러면서도 『통일 주체 대의원들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현 제도는 직선제와 국회에서 뽑는 간선제를 중화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개헌 문제와 관련하여 유 박사는 국민 총화를 이루는 방법론에 이의를 제기했다.
『국민 총화의 필요성에는 견해를 같이 하지만 총화를 이룩하는 방법이 문제예요. 정부·여당이 우리 노선을 따르라, 불평을 하지 말라, 불평을 하지 않음으로써 총화를 이룩한다고 하는데 그 점이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유씨는 내각 책임제 국가의 경우를 예로 들어 부연 설명했다.
『어떤 중대한 정치 문제가 생겨서 정부도 야당도 방향을 도저히 잡지 못할 때 총선거를 한번 한단 말이지요. 그때까지 정책이 아무리 심각했더라도 싹 풀려 아주 청신한 바탕 위에서 새 출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 경우에는 아무리 민간에서 하는 소리가 소수의 소리든 다수의 소리든 간에 탁 해결해서 새로 출발할 그런 길이 전혀 없어요. 무슨 정권을 내놓고 들여놓고 하는 게 문제가 아니고 그렇게 할 제도가 마련되어야 하겠어요.』
강의하듯 차분히 이어가는 현민은 이 대목을 얘기하고 싶어 대담에 나왔다고 주석을 달았다.
야당의 원외 투쟁이 못마땅했는지 정 의장은 지난 정기 국회에서 신민당이 예산 심의 등을 거부한 것을 다시 문제 삼았다. 『국회의원은 우선 예산을 심의하고 입법을 하는 것이 최대 의무인데 이런 의무를 이행치 않고 원외로만 뛰쳐나가려 하니 이런 자세는 옳지 못합니다.
『정치 문제라도 국회에서 충분히 의사 표시를 하고 토의하면 국민도 거기에 호응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다음 선거에 반영될텐데….』
정 의장은 의회 정치를 우선해야 한다는 지론을 폈다.
야당의 원외 활동에 대해서는 유 박사도 이의가 없지 않다.
국회라는 합법적인 기관을 버리고 원외에서만 활동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고 효과도 적다는 견해. 그러나 『민주주의는 수의 대결인데 야당이 3분의 1 미만의 세력으로 의사 관철이 어려운 것도 사실』 이라면서 원내에서 야당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 현실을 비판했다.
그러나 정 의장은 야당이 소수라는데 문제가 있지 않고 해주려고 하는 것도 거절한데 문제점이 있다고 했다.
『유 박사께서는 소수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으니까 밖에 나갈 수 있쟎느냐고 했으나 야당은 특위를 만들어 헌법 문제를 다루자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대화가 안보 문제로 넘어 갔다.
군 출신인 정 의장은 6·25때 미국이 전쟁을 예측하지 못했던 점을 상기시키고 북괴의 무력 증강, 평화 위장 속에서의 땅굴 사건 등을 들어 남침 가능성을 높게 보았다.
유 박사는 남침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다만 무력 균형, 미·소·중·일 등 4강의 세력 균형 정책 등으로 남침 개연성을 높게 볼 수 없다고 남침 가능성에 이론을 말했다.
민주주의론으로 얘기가 이어지자 두 사람은 국민의 자각이 중요하다는 점에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러나 그 「어프로치」 방법을 놓고 현민과 정 의장은 차이를 드러냈다.
유 박사는 처칠과 드골이 물러나게 된 배경을 예로 들었다.
『처칠은 2차 대전을 완수한 영웅으로 우리 나라 같으면 왕이나 귀족으로 하자는 운동이 일어날 법 하지만 영국 국민은 전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전후 수습 문제를 고려해서 노동당 정부를 택했잖아요?
드골 프랑스 대통령의 경우도 국민 투표에서 국민들이 물러가라는 의사 표시를 해서 물러났어요.』
이를 받아 정 의장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경제 불황의 수난 속에서도 전쟁하던 때라 4선까지 한 것은 미국 국민의 올바른 자세 때문이라고 인용했다,
대화에서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한 부분은 학생 문제.
「4·19」 당시의 고려대학교 총장을 지낸 현민은 학생들이 올바른 부르짖음을 하는 것 못지 않게 공부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나는 학생들이 자꾸 떠들고 나서는 것을 잘못 한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그렇다고 자표가 달성될 때까지 그렇게 하라고 권유할 생각은 없습니다. 어느 정도 의사 표시를 했으면 냉정한 이성으로 판단해서 공부해야 옳지 않겠느냐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현민은 학생 때 라틴어를 배우지 못해 지금껏 한스럽다고 했고, 정 의장은 여가만 생기면 하버드 「옥스퍼드」로 옮기며 면학했던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고는 『지금도 나는 훌륭한 사람만 있으면 배우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여야당에 들려주고 싶은 얘기를 주문하자 정 의장은 『너무 성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서로 관용과 인내로 협조하면서 지낼 것』을 요망. 현민은 여당에 『우리 의원들도 항상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국회의원은 전원 선거로 뽑아야 합니다.』 <기록=조남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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