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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을 보내면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1974년은 세계의 위와 밑이 다같이 크게 흔들린 한 해였다. 국제정치의 정상과 국제경제의 기저에 걸쳐서 위 아래로 격동적인 변화가 굽이친 한 해였다.
지난 한해동안 국제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했던 국가지도자만도 10여명이 권좌에서 물러났다. 『제신의 황혼』이라고나 할 이와 같은 정상의 대량교체는 역사상 일찌기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더우기 거기에는 미국·영국·프랑스·서독·일본 등과 같이 서방자유세계의 선진공업국들의 정부수반이 예외 없이 망라되고 있다. 지도자의 교체를 가져온 각 국의 사정은 저마다 상이하다하더라도 서방5대국에서의 거의 동시적인 「정변」은 서구민주주의의 전도에 대해 일반적인 위기의식을 야기 시켰다.
특히 「닉슨」미국대통령이 「워터게이트」사건으로, 그리고 「다나까」일본수상이 금권스캔들로 물러났다는 사실은 오래 동안 잊혀진 『정치와 도의』의 문제를 다시 한번 극적으로 사람들의 의식 위에 부각시켜놓았다.
국제정치의 이러한 정상의 변동은 직접 간접으로 그 기저에 깔린 국제경제의 지반변화의 한 표징이라 볼 수 있다. 지난해 10월 중동산유국들의 석유무기화정책으로 시작된 「에너지」파동은 올해의 세계경제 전반에 걷잡을 수 없는 난기류를 몰고 왔다.
「인플레」와 불황은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의 공적 제1호가 되고있다. 도처에서 새로운 경제질서를 강요하고있는 석유파동이 결과할 국제정치·세계경제에의 파급양상은 아직 그 전모를 종잡기조차 힘들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이 세계에서 싸구려 「에너지」시대는 갔다는 것이며 따라서 그 위에서 흥청거렸던 종전까지의 소비문명은 심각한 반성이 불가피한 전기에 서있다는 사실이다.
어쨌든 1974년의 세계가 체험한 변화는 다음과 같은 교훈적 의미를 암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다같이 정치와 도의, 경제와 도의사이에 벌어져있는 메울 수 없는 갭을 전광으로 비춰 준 것처럼 선명하게 조명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닉슨」과 「다나까」의 비극은 정치에 있어서의 도의적 타락이 최고권력자의 정치생명 조차 좌우하는 치명적 중대성을 갖는다는 것을 입증한 본보기였다. 그리고 석유파동·「인플레」·불황의 엄습은 기업인이나 소비자나 할 것 없이 사치·낭비와 같은 경제에 있어서의 도의적 타락이 어떤 파국을 초래할 것인가를 누구의 눈에도 분명하도록 가르쳐 주고 있다.
요컨대, 가장 착잡한 현대 정치와 경제의 최신의 위기가 정직·성실·절약·검소와 같은 가장 단순하고 고전적인 덕목의 중요성을 다시 부활 강조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바깥세계의 격동과 혼란 속에서 안으로 한국은 지난 1년 동안 어느 때보다도 어수선하고 험난한 한해를 걸어왔다.
한 마디로 말해서 국가경제와 서민가계는 60년대 이후 가장 어려운 시련의 고비에 조우하고 말았다. 더우기 내일의 전망이 반드시 오늘보다 밝다는 보장조차도 아직은 없다. 정치적으로는 개헌서명운동과 이를 물리적인 힘으로 억압하려했던 긴급조치로 새해가 밝았던 금년은 끝내 원외개헌투쟁과 폭력사태로 한해가 저물어 가고있다. 국가의 기본법을 둘러싸고 국론은 두 동강이가 나고 여와 야는 저마다 극단을 치닫는 대립을 「에스컬레이트」시키고 있다.
이처럼 살림의 어려움은 점점 더 심해지고 국민의 화조차 깨어진 가운데 우리는 지금 송구영신의 세밑에까지 왔다. 세모에 흘러간 한해를 되돌아 본다는 것은 변화하는 세월을 음미하고 시간과 역사에 대한 보다 큰 「퍼스펙티브」를 얻는다는데 있다. 그러한 「퍼스펙티브」가 오늘과 내일에 대하여 주는 교훈은 다른 것이 아니다. 역사에 있어선 이기는 자가 옳은 자가 아니라, 결국은 옳은 자가 이기는 자가 된다는 교훈이다. 정치에 있어서나 경제에 있어서나 도의성은 치명적인 중대성을 갖는 것이며, 역사에 도의문제의 차원이 깊이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는 이 같은 믿음을 소중히 그리고 가슴깊이 새겨보며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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