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화 리뷰] 진짜를 열망하는 가짜들의 사기극 … 최후 승자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디스코 클럽으로 향하는 FBI 요원 리치(왼쪽)와 사기꾼 시드니. 두 사람은 이날 뜨거운 밤을 보낸다. 1970년대의 디스코 풍을 재현한 의상과 미술도 이 영화의 볼거리다. [사진 누리픽쳐스]

‘아메리칸 허슬’(20일 개봉 )은 사기꾼들을 통해 인생의 희로애락을 그려내는 영화다. 메가폰을 잡은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은 최근 ‘파이터’(2010),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2)으로 흥행과 비평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할리우드에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펼치는 작가주의 감독으로 새롭게 급부상했다.

 밑바닥 인생들의 고난과 성공을 활력 넘치는 드라마로 그려내고, 배우들에게서 원초적인 명연기를 끌어내는 그의 장기가 이번 영화에선 더욱 유감없이 발휘된다. 이 영화는 3월초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 작품상, 감독상 등 총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그래비티’(알폰소 쿠아론 감독)와 함께 올해 최다 부문 후보작이다. 특히 ‘아메리칸 허슬’의 주요 배우 네 사람은 모두 남녀 주·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극 중 배경은 1978년 미국. 사기꾼 연인 어빙(크리스천 베일)과 시드니(에이미 애덤스)는 FBI 요원 리치(브래들리 쿠퍼)가 이끄는 함정 수사에 동원된다. 상·하원 의원과 시장 등 여러 정치인들의 뇌물 수수 혐의를 포착하는 게 목적이다.

영화는 이들이 수사를 벌이는 과정을 긴박하게 쫓는 한편 인물들이 겪는 감정을 충실히 따라간다. 사실 이 영화의 핵심은 후자다.

세 인물은 모두 한눈에 상대를 압도하는 배짱, 강렬한 매력과 언변으로 무장했다. 하지만 이들의 삶도 힘들고 어렵긴 마찬가지다.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늪과 같은 문제에 발목 잡혀 있다.

 어빙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의 마음이든 훔치는 천재적인 사기꾼이지만 아내 로잘린(제니퍼 로렌스)에게는 쩔쩔맨다. 시드니는 연인 어빙과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지만 아내에게 발목 잡힌 어빙에 반발해 일부러 리치에게 다가간다. 그 순간 시드니와 리치가 빚어내는 성적 긴장감은 스크린을 후끈 덥힌다. 가난한 이탈리아계 가정에서 자라 FBI 요원이 된 리치는 이번 수사의 성공에 자신의 인생이 달려있다는 강박에 빠져든다.

 각기 다른 욕망과 꿍꿍이를 지닌 이들은 저마다 절망의 밑바닥과 희망의 꼭대기를 격렬하게 오르내린다. 모든 걸 내던지듯 연기하는 배우들의 열연은 이를 마치 인간 감정을 음표로 옮겨놓은 한 편의 오페라처럼 적확하고 강렬하다. 그 오페라의 후반부에 시드니는 말한다. “이제 거짓은 신물이 나요.”

 어빙과 시드니는 자신들이 사기꾼이자 가짜라는 걸 인정함으로써 비로소 진짜 삶을 얻는다. 서로 속고 속이며 달려온 사기극의 최후 승자가 밝혀지는 결말의 쾌감 역시 상당하다. 이 영화의 소재는 FBI가 실제로 사기꾼과 손잡고 부패 정치인 함정수사를 벌였던 실화다. 청소년 관람불가.

장성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