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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혼미 속의 세계사정(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식량·자원 무기화>
60년대 후반부터 내연해오던 석유「내셔널리즘」이 73년10월 중동전을 계기로 표면화하자 「자원무기화」의 물결은 순식간에 전세계를 휩쓸었다.
지금까지 비교적 느슨하게 운영되어오던 ISA(원당)·IWA(소맥)·ITA(주석)·ICAC(면화)·ILZSC(연·아연)·IWSC(양모)·CIPEC(동)·ICA(코피) 등이 서로 앞다투어 산유국이 결성한 OPEC(석유수출국기구)의 전투적 운영방식을 도입했던 것이다.
심지어 「코스타리카」「파나마」 등 일부 중남미국가에서는 「바나나」의 무기화까지 선언, 수출가격 1백% 인상을 관철하기 위해 바닷물 속에 쓸어 넣는 소동까지 벌였었다.
이와 같은 조류는 지난 4월9일의 「유엔」자원문제특별총회 개최를 불가피하게 만들었고 자원생산국의 지위향상은 『신 국제경제질서 수립에 관한 선언』 및 『행동계획』에서 구체화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올 1·4분기까지 계속 치뛰기만 하던 주요원자재 가격은 2·4분기에 접어들면서부터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원당과 석유가 상승세를 유지하고 곡물류가 견조를 보였을 뿐 세계적인 불황을 반영하여 면화·동·양모·아연·고무 등은 폭락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주요 곡물가격은 72년 파동 이래의 오름세를 여전히 지켰던 것이다.
그리고 곡물가격은 원유값처럼 국제정치의 곡예에 의해 궤도가 수정될 가능성도 거의 없다.
식량 값이 비싸진 가장 큰 이유로는 역시 인구폭발을 들어야 할 것이다. 「식량과잉생산」을 염려하던 61년의 세계인구 30억에 비해 74년 현재에는 무려 30%가 증가한 39억을 헤아리고 있는 것이다. 국가간의 소득편재도 식량위기를 가중시킨 중요한 원인의 하나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현재의 식량고가격체계는 지난 72년 소련이 미국으로부터 1천5백만t의 곡물을 사들일 때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나 소련인구의 3∼4배나 되는 저개발지역의 주민들은 이미 수십년째 기아에 허덕여왔지만 식량파동을 일으킬 능력은 없었다. 수입해갈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60년대까지 지속된「식량과잉생산현상」은 5억이라는 항구적 기아인류를 바탕으로 한 하나의 병리현상 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소득격차로 인한 식량위기의 가중은 다른 측면에서도 발견된다.
즉 61∼74년 사이에 세계인구가 30% 늘어났지만 그동안 곡물생산량은 52%나 증가했었다. 이 숫자를 평면적으로 비교하면 세계전체의 식량사정은 오히려 좋아져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소득수준이 높은 선진국에서는 전 곡물생산량의 38%를 차지하는 보리·쌀·옥수수 등을 가축먹이로 사용해왔다. 같은 「칼로리」의 영양을 육류로 취할 경우 5배의 곡물이 사용되므로 사료의 대량소비가 식량위기를 가중시킬 것은 뻔한 이치다.
이를테면 후진국의 저소득인류는 선진국의 가축들과 생존상의 경합관계에 서게 된 셈이다.
이유야 어쨌든 간에 74년 초 현재 전세계 곡물재고는 61년 수준의 54%인 9천1백15만9천t으로 줄어들었다.
게다가 올해의 세계작황 역시 신통치 못하다. 가뭄과 홍수에 시달린 중앙「아프리카」지역과 인도대륙·남미 일부지역은 차치하고라도 소련의 소맥생산량이 작년보다 1천만∼1천5백만t이 줄어든 전망이며 「캐나다」 역시 당초 예상수확량 2천만t에서 1천4백만t으로 떨어졌다. 따라서 인구폭발과 소득편재라는 구조적 모순 외에 수출국의 「무기화」위협까지 겹친 세계식량사정은 앞으로 그 주름살이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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