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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의 원내 난투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동안의 우여곡절 끝에 모처럼 다시 열린 국회 본회의는 그 첫날에 집단 난투장이 되고 말았다. 14일의 대정부질문에서 신민당의 정일형 의원의 발언을 유정회의 송호림 의원이 완력으로 방해하려고 했으며, 이것이 도화선이 되어 여야의원 수십명이 서로 치고 받는 격투를 벌이는 추태를 연출했던 것이다. 국회가 또 다시 본무를 제쳐놓고 이 사건 때문에 혼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은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흔히 논자는 우리의 민주정치의 역사가 얕기 때문에 탈선도 하고, 무질서도 나타난다고 한다. 그러나 영국이나 미국 의회에서 건국이래 그 언제 의사당에서 회의 도중 의원들끼리 치고 받고 때리는 난동을 겪어본 일이 있었는가. 그 옛적에 서류뭉치를 반대정당 의석에 던진 영국 국회의원은 있었다. 또 서로 밀고 밀리는 옥신각신은 가까운 일본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원로의원의 발언을 완력으로 막으려는 난투극이란 그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그네들이라고 위급한 사태와 중요한 고비를 경험해 본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전쟁과 비상사태로 나라가 송두리째 뒤흔들리고, 또 국민의 감정이 극도로 대립하는 격렬한 고비가 없었을 리 없다. 그러나 그런 위기를 극복하고 안정과 번영의 계단을 하나씩 걸어 올라갈 수 있었던 까닭은 위정자들이 민주정치에 있어 의회정치의 「룰」을 존중해야 할 이유를 냉철하게 판단하고, 그 「룰」을 깨지 않으려는 현명과 자제심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이다.
국민의 대변자로서의 국회의원은 그런 의미에서 그 행동에 있어 최소한 일반국민보다는 더 깊이 생각하고 또 그 언행을 더 신중히 해야 할 책임을 느껴야 한다. 국회의원이라고 감정이 없을 리 없으며, 참지 못할 분노로 주먹을 불끈불끈 쥐었다 놓았다 할 심정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그것은 사생활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이요, 적어도 국회 안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할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의사당에서의 폭력사태는 국회의원의 기본적 의무를 저버리는 것으로 규탄되어야 한다.
그 까닭은 국회가 가진 기능이란 『말』을 통하여 일을 처리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대화가 국회의원의 주임무라는 뜻은 그들에게는 감정과 완력은 금물이라는 뜻도 된다. 그것은 또 이성과 인내와 관용이 요청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국회의원의 직책이란 있는 감정을 송두리째 노출하면서 원시적인 주먹을 내휘두르는 것으로는 도저히 수행키 어렵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또 일단 국회의원이 되면 이 같은 본분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다른 나라들도 우리에게 못지 않은 고난과 위기를 다 겪어왔고, 또 겪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국회는 한번도 주먹의 난무를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정의 중심이 될 수 있는 권위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 국회만이 이처럼 부끄럽기 한이 없는 추태를 계속 보여야만 하는가. 국회의원은 의사당 안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폭력을 사용할 자유도, 권리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공전국회를 하루 속히 정상화해 주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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